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모르면 가만히 있기라도 해야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설쳐댄다. 일을 힘으로 하는 줄 알고 밀어붙이는 상사를 보면 한심하고 심란하다. 상사와의 충돌을 피해 퇴근길 술집으로 달려가 “저승사자는 뭐하나 몰라, 그 인간 안 잡아가고…”를 외쳐보지만 허허롭다. 내일 다시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러다간 북받쳐 오르는 울분을 삭이기 위해 마시는 술값이 월급을 앞지르겠다.
난제에 봉착할수록 노련한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감정이 격해지면 이성이 마비된다. 일도 힘든데 감정 쏠림에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 상사와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감정 싸움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사의 허황된 기획들을 현실화하느라 눈썹이 휘날리도록 자판을 두드린 것은 무모한 ‘뻘짓’이 아니다. 미래를 위한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어차피 상사가 밀어붙인 대로 하면 석 달쯤 후에는 옳은지 그른지 판명이 날 것이다. 그때쯤이면 상사도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고 그 시간까지 본 손해는 다음에 우리의 정당성을 펼치기 위한 객관적 자료가 될 것이다. 달갑지 않아 하면서 발 담그고 있는 것보다 관심 갖고 애썼는데 성공하지 못한 게 더 할 말이 많다. 그랬는데도 부작용이 나타나면 내 예상이 맞은 것이고 다행히 잘 치러냈으면 상사의 예상이 맞은 것이다. 끝을 찾아나가는 미로 퍼즐을 맞추듯이 장난기 어린 눈으로 지켜보자. 전쟁 중의 병사도 훈련은 실전같이 하지만 실전은 벌벌 떨기보다 게임하듯 한단다. 전쟁 중에 천하의 장군이 때에 따라 납작 엎드리기도 하고 적이 올 때를 기다리기도 하듯, 자존심 걸고 덤비지 말고 상황 봐가며 게임하듯 대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