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다바리, 명함에 박아야 할 내 핵심직무다. 잔심부름을 하는 잡부 같다. 회의시간에 딱히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면서 매일매일이 너무 바쁘다. 점심시간에 음식 시키는 것부터 풋고추가 매운지 안 매운지 먹어보라는 것까지 별거별거를 다 시킨다. 경영을 배우려고 회사를 다니는데 장사만 하고 있고 기획을 배우려고 입사했는데 복사만 하고 있다. 이럴 거였으면 고생스럽게 학교에서 그 복잡한 경영이론을 왜 배웠는지 모르겠다.
"기본"을 바라보는 시각이 고수와 하수를 갈라 놓는다. 하수는 기본을 우습게 여긴다. 쉬워 보이고 남들도 다 하는 일이라 대충 건너뛰고 싶어한다. 빨리 고수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 성공의 길이라고 여긴다. 반대로 고수는 기본을 가장 중시 여긴다.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 배우는 기본은 익히기 쉬워서가 아니라 중요하기 때문에 처음에 배운다고 생각한다. 강력하고 멋있어 보이는 내공도 기본을 잘 닦아야 나온다고 생각한다. 고수의 내공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본기"를 100% 자기 것으로 만든 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쌓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단순업무를 정말 단순한 업무로 해치우는 사람은 단순함 그 이상을 못 넘어선다. 단순업무는 고수의 길로 가기 위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다. 복사, 우편물 발송, 자료조사를 하면서 내용, 의미, 기획방안을 감안해 "단순"하지만은 않게 처리해야 한다. 단순업무를 시키는 것은 인재를 몰라본 채 하찮은 일을 시키는 게 아니라 인재로 키우려고 하나부터 다지는 중이다. 경영을 배운다고 겉멋만 들면 모래 위의 성처럼 쉽게 무너진다. 장사부터 하면서 실속 있는 기본을 다지자. 기획은 책상에서 볼펜을 굴릴 때 나오는 게 아니라 발로 뛰면서 복사하는 과정에서도 깨달음을 얻을 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