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순 서울 역삼동 LG텔레콤 대회의실.
직원 2명이 이상철 부회장 등 최고경영진 앞에서 20분씩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발표자 중 한 명인 곽동욱 응용서비스연구팀 연구원은 "야구장에서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해 선수를 비추면 휴대폰 화면에 해당 선수의 타율ㆍ홈런 수 등 각종 정보가 나타나는 서비스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또 다른 발표자인 문현구 신사업기획팀 과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이날 LG텔레콤 최고경영진을 앞에 두고 곽 연구원과 문 과장이 발표를 하는 영광(?)을 안은 것은 이들이 지난 3월 한 달간 사내 지식포털 블루아이에 가장 뛰어난 아이디어를 올린 직원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이날 발표회 이름은 `LG테드(TED)`라고 붙였다. TED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매년 기술(Technology), 오락(Entertainment), 디자인(Design)과 관련한 참신한 트렌드나 아이디어를 소개하는 자리다. 미국 TED에 버금가는 아이디어가 LG텔레콤에서도 나올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에서 LG테드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명이다.
"눈비가 오는 날이면 자동으로 휴대폰을 통해 10분 먼저 모닝콜을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어떨까요?"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보험사와 영상통화를 연결해주고 화면을 녹화할 수 있는 기능을 도입해 볼까요?"
지난 1월 LG텔레콤, LG데이콤, LG파워콤 등 LG그룹 계열 통신 3사가 LG텔레콤으로 합병한 후 3월 1일자로 새롭게 론칭한 사내 지식경영 포털 `블루아이(Blue Eye)`에 직원들이 올린 아이디어다. `블루`는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새로운 시장을 의미하는 블루오션에서 따왔고 `아이`는 블루오션을 찾아낼 수 있는 눈(Eye)을 뜻한다. 또 `아이`는 이노베이션(Innovation)의 이니셜 `I`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블루아이에는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인 통신업계에서 경쟁 우위를 점유할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생산, 블루오션을 찾겠다는 LG텔레콤의 의지가 담겨 있다.
이는 통합 LG텔레콤 수장인 이상철 부회장의 `애플론(論)`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부회장은 "애플이란 회사는 레드오션 시장만 골라가며 파란색 물감을 뿌리고 다닌다"며 "레드오션을 블루오션으로 만들어가는 창의력과 열정을 벤치마킹할 만하다"고 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사실 LG텔레콤은 그동안 SK텔레콤과 KT라는 거대 경쟁자 사이에서 고전해왔다. 3세대(3G) 통신을 포기하면서 한때 위기론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모바일인터넷 서비스 `오즈(OZ)`가 지난 1월 말 현재 가입자 109만명을 끌어들이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하지만 상황이 다시 녹록지 않게 변하고 있다. 아이폰을 앞세운 KT가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하면서 경쟁구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3G망이 없는 LG텔레콤 처지에서 2012년 4세대 이동통신망 LTE(Long-term evolution) 도입 전까지 공백을 어떻게 메우느냐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통합 LG텔레콤이 `탈(脫) 통신`을 내세우며 반짝반짝하는 혁신적인 사업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지식포털 블루아이를 출범시킨 배경이다.
블루아이 사이트는 크게 두 가지로 구성돼 있다. 먼저 직원들의 신사업 아이디어를 모으는 아이디어 팩토리 코너다. 아이디어 팩토리에 지난 3월 한 달간 100여 건의 아이디어가 올라온 데 이어 이달 들어서만 400여 개의 아이디어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아이디어 팩토리 코너가 출범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실질적인 성과도 내고 있다. LG텔레콤은 지난 1월부터 휴대폰에 내장된 스팸 신고 기능을 이용하면 휴대폰 소지자가 직접 차단번호를 입력하지 않더라도 스팸 리스트에 번호를 자동 저장하는 스팸 자동차단 서비스를 무료로 출시했다.
그러나 대다수 고객은 이 같은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이재훈 CV(고객가치)채널팀 과장은 아이디어 팩토리에 "고객들에게 스팸 자동차단 서비스에 가입하도록 안내 문자를 보내자"는 아이디어를 올렸다. 사측은 이 과장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겨 고객들에게 스팸 자동차단 서비스에 가입토록 하는 안내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이 과장의 아이디어는 일평균 스팸 자동차단 서비스 가입자를 기존 500명에서 2500명으로 5배나 늘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과장의 아이디어 외에도 28건의 아이디어가 사업화 가능성을 인정받아 구체적인 사업화 단계에 들어갔다. 아이디어를 낸 직원들에게는 혁신마일리지를 최고 30점씩 부여했다. 100점을 채우면 현금 100만원을 받게 된다.
블루아이 운영을 맡고 있는 전략조정실 BPR(비즈니스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팀 박영민 과장은 "블루아이를 통해 금융, 의료, 스포츠, 오락 등 이종 분야와 접목한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 등 탈통신 사업기회를 발굴하고 있다"며 "직원들의 참여 열기가 예상보다 뜨겁다"고 전했다.
블루아이에는 아이디어 팩토리 외에 혁신과제 코너도 마련돼 있다. 이곳에는 주로 프로세스 개선과 비용절감 아이디어가 올라온다. 4월 첫째주까지 혁신과제 코너에 등록된 아이디어는 총 200여 건이다. 이들 200여 건의 아이디어가 제시한 비용절감 목표금액만 267억원에 달한다. 실제로 이미 11건의 혁신과제를 실행해 약 3억원의 비용을 절감했다. 박 과장은 "혁신과제는 제안자가 프로세스 개선방식은 물론 구체적 성과까지 스스로 예상해서 제안한다"며 "본부장급이 평가해 제안 성과의 0.5%를 제안자에게 마일리지로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0억원의 비용 절감 아이디어를 낸 직원이라면 500만원의 성과금을 챙길 수 있다.
블루아이 활성화를 위해 별동대도 조직했다. 블루보드란 이름으로 각 부서에서 모두 106명의 블루아이 담당직원을 선발했다. 32명은 커뮤니케이션 보드, 나머지 74명은 밸류 보드에 속해 활동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보드 직원들은 사업화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단순히 제안 수준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사업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조력하는 일종의 `아이디어 서포터스`인 셈이다. 밸류 보드는 혁신과제 상담을 맡는다.
일반적으로 사업 아이디어를 모집할 때 자기가 속한 부서 일이 아니면 꺼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블루아이는 보이지 않는 부서 간 장벽도 허물었다. 어떤 아이디어든 블루아이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블루보드가 알아서 피드백을 해주고 사업화를 도와줄 조언자까지 선정해주기 때문이다.
[매일경제 박봉권 기자 / 신헌철 기자 / 차윤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