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필름이 끊어져도 술 깨고 나면 견디기 어려운 상실감은 그대로 있다. 사랑하는 연인이 약속을 펑크내고 전화를 안 받고 문자를 씹고 이메일을 받지 않는다. 실연당한 걸까. 이제는 저 세상 사람이 된 부모, 친구, 인연, 그동안 묻어둔 해묵은 상실의 기억들까지 걷잡을 수 없이 함께 몰아쳐 온다. 삶은 왜 이리도 상실의 연속일까.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와도 다시 연을 맺고 싶지 않다. 슬퍼서 꼼짝달싹 못하겠다.
돌던 팽이는 단숨에 멈출 수 없다. 슬픔을 잘 마무리하자. 어린이가 애완견을 잃었을 때 재빨리 새 강아지를 사주는 것보다 충분히 잃은 강아지에 대해 슬퍼할 시간을 줘야 하는 것처럼 슬퍼하고 낙담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다 삶을 연습하는 과정이고 이 과정을 통해 마음의 키가 자라고 정신의 힘이 커진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실을 경험했는가. 그동안 잃었던 상실의 목록을 적어보면 이번 말고도 잃은 게 참 많다. 돈, 물건, 직위, 사람, 기회, 무수한 것을 잃고 또 그 빈자리를 새로운 것으로 채우며 살아왔다. 인생은 상실이다. 상실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기보다 상실감을 친구 삼아 살자. 떠난 사람을 찾는 것보다 내면에 있는 그리움과 함께 사는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사람을 잃거나 소중한 대상을 상실하고 나서 그것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때 생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슬픔인지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나쁜 대체대상에 빠져들거나 섣부른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녀를 잃고 이혼하거나 실연 후에 퇴직하고 유학가거나, 느닷없는 여행으로 도피하는 것, 술, 담배, 자동차, 오디오 등 충동적인 쾌락으로 도망가는 경우다. 고통은 참는 것보다 피하는 게 쉽지만 피하고 나면 다시 솟아난다. 참고 극복하고 디디고 일어서야 한다. 바로 멀쩡하게 괜찮을 수는 없다. 다만 얼마나 오래 걸려서 슬픔과 익숙해지는지의 문제다.
기업교육컨설팅`파도인` 대표 지윤정 toptm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