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성공 기업으로 손꼽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대표적 운용체계(OS) ‘윈도’는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가 강조하는 제품 차별화나 저가 전략을 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OS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애플의 ‘아이폰’은 애프터서비스(AS)에 대한 불만 폭증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상륙한 지 4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이 50만대를 넘어서면서 최단기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은 각각 PC OS와 스마트폰 분야에서 세계적인 강자임에는 틀림없다. 이들의 성공 비결은 교과서에서 나오는 것처럼 뛰어난 제품이나 가격 자체의 우월성도 아니고, 고객만족에 기반한 마케팅 전략을 앞세운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성공으로 이끌었는가. 그것은 바로 ‘네트워크 전략’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텔과 사실상의 표준 획득을 통해 윈텔이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개발자 및 PC 업체들은 이들에 호환이 되도록 소프트웨어 및 PC를 만들어내며 힘을 실어주었다. 애플 역시 여러 개발자를 앱스토어로 끌어들이는 등 콘텐츠, 플랫폼, 단말기, 이통사들이 함께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이로써 앱스토어라는 사실상의 표준이 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네트워크 구축의 중요성은 과거 우리나라의 글로벌 진출 성공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8세기경 통일신라의 장보고는 청해진을 본거지로 하는 해상물류망을 구축하고 일본과 중국 등에 신라방과 신라소라는 이름으로 무역사무소를 설치해 중개무역을 했다. 당시 청해진은 단순히 여러 나라를 연계하는 지리적 장소를 제공한 것이 아니라 정부 공식사절 안내, 여객 운송, 선박 건조와 수리, 통역 및 선원 제공, 종교·문화 지원 등의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상업, 행정, 군사적 서비스를 통합 지원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해 제공한 셈이다.
우리는 명실상부하게 세계 최초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과 와이브로(WiBro)를 상용화하고 이를 세계표준의 하나로 만든 국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IPTV는 비록 다른 나라에 비해 상용화가 늦었지만, 뛰어난 장비기술로 단말 시장에서 급성장하고 있으며, 한류를 배경으로 한 방송콘텐츠의 해외 진출 등 방송통신 분야에서 우리의 우수성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국제 경쟁력과 기술적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방송통신 서비스와 관련한 우리 기업들의 해외 진출 성적은 부진한 게 현실이다. 현지 시장에 대한 정보 부족 및 금융지원 문제, 진출 대상국의 규제 및 주파수 정책, 현지 파트너와의 전략적 협력 문제 등 해외로 진출하려는 기업이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별 기업만으로는 온전한 지배력을 확보하기가 어렵게 마련이며, 개별 기업이 갖는 자원과 역량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네트워크다. 이 네트워크는 기업 간 연대를 통해 갖추어질 수 있으며, 여기에 정부의 과감한 지원이 추가된다면 네트워크의 결속력과 능력은 훨씬 더 강해질 것이다. 바야흐로 지금은 융합의 시대다. 이 융합의 시대에 걸맞게 기술과 서비스 그리고 정책의 융합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해 방송통신 서비스와 성장 가능성이 큰 미디어산업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려는 체계적이고 복합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다.
설정선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OTA) 상근부회장 12jss@kto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