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 BIZ] 취재수첩 - 클라우드시대 IT설계와 디자인

 IT 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은 행사의 주제와 성격을 한 번에 알려주는 정수라 할 수 있다. 특정 기업이 주최하는 콘퍼런스에서는 대부분 해당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기조연설을 한 후 주요 고객사의 최고정보책임자(CIO), 전문 애널리스트나 유명 학자 등 구루(guru)의 기조연설이 이어진다. 자사가 나아가려는 방향성과 비전, 그리고 그 방향성에 대한 전문가의 검증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13일 열린 한국EMC의 ‘EMC 포럼 2010’ 행사는 약간 이색적이었다. EMC 최고기술책임자(CTO)의 기조연설에 이어 두 번째 기조연설자로 IT와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디자인 기업의 CEO가 나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한 것이다. 김영세 대표가 이끄는 이노디자인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산업 디자인 전문업체이긴 하지만 EMC라는 IT인프라스트럭처 전문 솔루션 업체의 행사에서 디자인 강연은 생소했다.

 김영세 대표 기조연설의 결론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디자인하라’였다. 어떻게 하면 원가를 아낄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팔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 좋은 디자인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자신을 울린 자녀의 어버이날 카드를 소개하며 사랑하는 이가 사용한다고 생각할 때 열정과 노력을 기울인 최고의 디자인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가 말하는 디자인은 곧 “(대상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이 교과서적인 이야기에 여운이 남았던 것은 IT 디자이너들은 과연 어떤 생각으로 디자인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IT에서도 시스템 디자인, 아키텍처 디자인, 인프라 디자인, 데이터베이스 디자인 등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자주 사용된다. 디자인(구축 설계) 작업의 중요도 또한 높다. 그렇다면 지금 IT 디자이너(설계자)들은 자신이 디자인하는 시스템과 서비스를 사용할 사용자들을 얼마나 배려하고 있을까. 속도와 성능, 편이성 등 최종 사용자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혹시 최종 사용자는 알 리 없을 것이라며 임시방편으로 속칭 ‘땜빵’한 소스코드를 이리저리 틀어막고 있진 않는지 말이다.

 클라우드 컴퓨팅 시대 IT 디자인은 더 이상 땜빵으로는 지탱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클라우드 서비스를 위한 IT 디자인은 지금보다 더욱 디자인 본연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어떤 사용자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기능의 서비스를 요구하는지 대상과 목표가 명확한 기업 내 업무 시스템과 달리, 클라우드 서비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불특정 다수의 사용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비스에 실망한 사용자는 언제든 다른 서비스로 갈아탈 수 있다.

 요즘 디자인 경영, 디자인 도시 등 디자인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이때 사용된 디자인은 보기에 아름답고 체계적인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듯하다. 하지만 사랑받는 디자인은 두 가지 요소를 충족시켜야 한다. 수려한 외관과 사용의 편의성이다. 김영세 대표의 기조연설은 클라우드 시대 IT 디자이너들은 아티스트에 준하는 아키텍트로 거듭나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박현선기자 hs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