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과대 배출로 인한 지구오존층 파괴와 심각한 환경문제가 제기된 가운데 최근에는 아이슬란드의 화산폭발이 각국 경제활동, 특히 유럽의 경제활동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 일상적으로 변화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환경이 경고하듯 현실에 침투해 제약조건을 만드는 상황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앞으로 환경문제가 심각하게 다뤄져야 하는 것은 화산 이상의 자연재해를 가져올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영상회의를 포함한 대체기술을 활용해 공간적인 제약을 넘어설 수밖에 없었다.
세계가 글로벌화하면서 양자 간 교류·협력을 위해 많은 인구들이 이동하게 됐다. 따라서 국가별로 지능화된 교통체계를 구축해 유동인구가 좀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해 삶의 질을 높이고자 했다. 특히 유럽, 미국, 일본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첨단교통체계를 도입했다. 정부 주도로 민간기업·연구소·학계가 공동으로 교통문제를 국토이용, 환경, 에너지와 관련된 전반적인 문제를 다뤘다. 하지만 날로 급증하는 교통수요와 이에 따른 환경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파리, 공간적 설계로 교통 효율성 높여=파리는 이미 약 110년전부터 전철과 같은 대중교통을 통해 유동인구의 수요를 충족시켰다. 특히 교통수단보다 공간적 설계를 통해 교통 효율성을 높였다.
파리는 매우 체계적으로 설계된 도시다. 교통시스템이 마치 반도체의 회로를 연결하는 전선처럼 넓은 지역으로부터 가까운 곳을 잇는다.
프랑스는 파리를 구축하고, 변천하는 단계에서 이미 도시의 공간적인 요소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현대판 공간 중심 대중교통설계를 고려한 도시 모형은 중동의 저탄소 도시인 마스다르(Masdar)를 예로 들 수 있다.
파리는 이미 18세기부터 공간 효율 제고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17∼18세기에 무분별하게 팽창해 혼란스러워진 파리는 1853년 나폴레옹Ⅲ세의 등장으로 도시 공간 구조를 재정비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의 목표는 증가하는 인구를 모두 수용하고, 왕권을 상징하는 중심도시로 만드는 것이었다.
파리를 근대화한 관리인 오스만(Georges-Eugene Haussmann)은 체계적인 방법으로 도시 공간의 총체적인 윤곽과 지형을 조망하면서 1853년부터 1870년까지 17년 동안 기차역, 광장, 주요 건축물 사이를 시원한 직선대로로 연결했다. 교통망을 개선하고, 이와 관련한 도시 개발 변혁을 일궈낸 것이다.
파리 지하철은 1호선을 기점으로 1900년부터 운행해 1950년까지 매년 승객 4억5000만명을 태웠다. 파리교통공사에 따르면 2008년 파리 지하철 이용객이 30억명에 달했다. 이렇듯 파리 시민은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
지하철이 활성화하다 보니 1998년 개통한 14호선에 자동 운행체계가 등장할 정도로 발전했다.
파리의 매력은 걸을 때 더욱 살아난다. 시민이나 여행객이 역사 유물을 중심으로 걸으며 파리에 빠져들게 했다. 무엇보다 30분 정도 걸으면, 웬만한 파리 중심가로 이동할 수 있는 게 매력적이다. 30분 정도 걸어가면 지하철 8∼9 정거장과 비슷한 거리다. 한국의 지능형 교통체계에 정보통신기술이 집약된 것과 달리 파리에 적용된 공간적 설계 기술들은 ‘눈에 띄지 않게’ 사람들의 삶의 배경에 존재한다.
◇지하철, 버스, 자전거… 편리한 대중 교통=파리 시민 대부분은 파리교통공사(RATP)에서 운영하는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한다. 지난해 1월부터 전자 자기 방식의 아르에프(RF) 교통카드(Passe Navigo)를 도입해 편의성을 더했다.
파리 고속전철(RER)과 지하철(Metro)은 6개 구역(Zone)으로 나뉜다. 파리 외곽으로 나갈 때에는 지하철에 연결된 고속전철을 이용할 수 있다. 지하철은 13개 노선에 368개 역이 있다. 지하철 역 간 소요 시간이 1분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거리가 매우 짧다. 따라서 웬만하면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인 것이다.
버스 노선은 매우 다양하다. 파리 시내 전경을 감상하며 이동하기에 적합하다. 마이크로 버스는 일반 버스나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서너 정거장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만들었다. 파리 내 여러 공원을 목적지로 삼아 구간을 설정했다.
프랑스 시민들은 파리의 높은 집세와 물가 때문에 대부분 교외에서 거주한다. 때문에 대부분 고속전철(RER)을 타는데, 파업이 잦아 믿을만한 노선이 되지 못한다는 게 흠이다.
대여용 자전거인 ‘벨로’는 동네와 지하철 역 주변에 있다. 자전거를 대여하기 위한 키오스크와 연결이 되어 있어, 신용카드나 교통카드로 자전거를 충전거치대에서 뺄 수 있다.
◇승용차는 불편=파리에서 개인 승용차를 유지하려면 매우 번거롭다. 주차공간이 매우 비좁아 범퍼를 부딪히면서 주차를 하는 모습이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범퍼 파손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이 드물다. 자동차 파손 등이 흔한 일이기 때문에 차고를 임대해 주차하는 경우가 많고,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
도로 주변에 주차할 공간이 많지 않은 것도 문제다. 불법주차가 심각한 수준이다. 빽빽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옛 건축물들은 도로 확장에 장벽이 된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출근 시간인 오전 8시, 퇴근 시간인 6시에는 자동차 도로가 늘 정체된다. 버스 전용 차로가 있기는 하지만, 워낙 도로가 비좁기 때문에 외곽순환도로 외에는 도심 도로는 이미 포화된 상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걷거나, 대중교통 이용을 더 좋아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따르면 유럽에서 생산되는 새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05년 주행거리 1㎞당 162g에서 2012년엔 130g으로 절감해야 한다. 2005년보다 18%를 줄어야 하는 것이다. 지난해 9월 10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신규 조세인 ‘탄소세’ 관련 정책을 발표했다. 탄소세는 화석에너지 소비와 관련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차등 적용되는데, 지난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자가용을 가진 사람은 환경세를 내야 하며, 새 차를 구매하는 사람도 환경세를 물어야 한다.
◇친환경적 정보통신시스템 활용=요즘 한국이 대중교통 구축 체계가 효율성과 정확성 확보를 주목적으로 하다 보니, 도로 환경을 수반하는 에너지 소비 기술들을 상대적으로 크게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 파리는 다르다. 버스를 기다릴 때 간단한 흑백 발광다이오드(LED)로 예상 대기시간만 제공한다. 부가 정보를 많이 주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 이와 달리, 대형 액정화면표시장치(LCD)를 통해 화려한 디자인과 선명한 이미지 정보를 제공한다.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대기하는 시민을 위해 각종 광고를 비롯한 지하철 정보들을 제공한다. 광고 수입 등 많은 부분이 상업적으로 활용되겠지만, 곳곳에 대형 LCD 패널 등을 부착하는 것은 오히려 교통이 환경문제를 일으킨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니까.
세상이 점점 첨단화되는데도 파리는 첨단 장비를 동원해 사람들이 즐기는 자연환경, 일반 거리의 미화를 망치지 않으려 애쓴다. 고유의 것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굳이 필요하다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차원에서 단순한 기술들을 도입한다. 필요한 것만을 충족시키는 게 파리의 기술 철학으로 여겨진다.
파리를 걸어다니면 너무 밝은 LED나 LCD 창들에 눈을 사로잡힐 일이 없다. 저녁에는 에펠탑에서 나오는 여러 색 불빛과 조명이 파리의 거리를 밝힐 뿐이다.
파리(프랑스)=정기욱 OECD 이그제큐티브 디렉터러트(Executive Directorate) kiwookje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