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토종 애니메이션이 사라졌다. 국내에서 제작된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낮은 개봉 비율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그 추세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전국 기준으로 연간 3편씩은 꾸준히 개봉해 왔다. 2008년 들어서 그 수치는 2편으로 줄었고 지난해는 ‘제불찰씨이야기’ 단 1편에 그쳤다. 그나마도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진두지휘아래 제작된 작품이라 업계 자력으로 일궈낸 결과라고 보기는 힘들다.
제불찰씨 이야기가 상영된 스크린 수 역시 단 1개에 불과하다. 같은해 개봉된 외산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2’가 381개 스크린을 확보했던 사실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수치다. 슈렉이나 가필드 등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은 2000년 13편에서 2009년 27편으로 수주한 작품 편수는 근 10년간 두 배 이상 늘었다.
국산 애니메이션의 지원사업을 담당하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애니메이션 예산은 연간 약 50억원에서 60억원 사이. 이 돈으로 실질적으로 방영이 가능한 작품을 지원하고 파일럿 지원, 단편 지원, 산학연계 지원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진흥원 전체 예산인 약 1800억원 중 3% 정도다. 진흥원 관계자는 “극장용, TV시리즈 모두 포함해 제작지원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모자란 것은 맞다”며 “예산확충은 콘진원 관할이 아니라 향후 확충 일정은 불투명한 상태”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업계 관계자는 “극장용은 엄두도 못내고 있으며 과거 견실했던 업체들도 부도 직전까지 처한 경우가 많다”며 “그나마 TV애니메이션은 시장상황이 좀 나은 편이지만 전반적으로 애니메이션 산업은 최악의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문미옥 서울여대 아동학과 교수는 “어린이들이 지속적으로 외산 애니메이션만 보고 자라면 해당 국가의 문화에 우리 문화가 침식되는 현상을 겪을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짱구는 못말려’는 국제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일본의 가치관과 문화가 그대로 배어있다”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또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어린시절 접했던 콘텐츠가 무엇이었느냐가 중요하다”며 “인간은 테크놀로지만으로 살 수 없고, 그 안에 담긴 정신세계가 견실해야 세계적인 주도권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미나기자 mina@etnews.co.kr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극장용 애니메이션 상영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