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포럼] 천안함과 남북 과학기술 협력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글로컬협력센터 소장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글로컬협력센터 소장

천안함 사건의 여파가 대북사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인도적 지원 등의 일부 영역을 제외한 대북교류를 중단했다. 이에 따라 지난 10여년간 지속되던 남북 과학기술 및 학술협력사업도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됐다. 신규사업 추진이 어렵게 됐다. 흔히 과학기술은 이중적 용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군용과 민용 제품 모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안보 측면에서 대립하는 국가들 간에는 비록 평화적 용도를 표방하더라도 본격적인 과학기술협력을 추진하기 어렵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첨단기술이 국가경쟁력과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경향은 이제 곧 편성하게 될 차기연도 예산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나는 현 상황만으로 모든 것을 판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안보와 협력이 강조될 때 모두에서 과학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는 과학기술이 이중적 용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에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면서 민간 차원에서의 북한 과학기술 연구와 협력이 태동했다. 비록 그 교류가 단편적이고 일회성에 그친 경우가 많았지만, 비교적 넓은 분야에서 북한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따라서 1990년대 중반에 북한 핵문제로 협력이 중단되었을 때에도, 조사 및 분석과 정책연구 등으로 동 사업이 지속되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연구를 지속했던 기관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크게 확대된 남북과학기술협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북한의 과학기술에 대한 기본지식을 잘 갖추면, 응용분야가 바뀌어도 주어진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최근의 천안함 사건과 북한 핵융합 발표 등에서 북한 관련 연구기관들이 다양한 기여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을 살리면 기존 남북 과학기술협력사업을 약간 조정해서 더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직접협력이 위축되어도 각 분야에 대한 조사 분석과 예측, 대북정책 수립 등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그동안 북한과의 과학기술교류를 추진했던 기관들이 축적한 정보와 자료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사업관리와 항목의 일부 조정으로 주력방향을 협력에서 분석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북한과의 세미나를 국내외 전문가들과의 세미나로 전환하거나, 사업비 일부를 조사사업과 정책연구, 외국과의 비교연구 등에 사용하도록 조정할 수 있다. 각 과제책임자 간의 연계와 협력을 강화해 공동으로 정부정책을 지원할 대형과제를 수행할 수도 있다.

정부의 대북정책이 크게 변화하지만 북한 과학기술 연구를 위축시키지 말았으면 한다. 최근 벌어진 사건들에서 보듯이, 과학기술은 북한과 관련한 이슈들을 해명하고 국론을 통일하며 합리적인 대북정책을 수립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기술 각 분야에서 체계적으로 북한을 연구하는 활동이 지속될 때 더욱 강화될 것이다. 대북정책은 정부와 민간의 유기적인 협력과 역할 분담이 이루어질 때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그동안의 노력으로, 민간 부문의 북한 관련 연구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최근 들어 상황이 크게 악화되었지만, 이를 위축시키지 말고 정부 차원에서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춘근/과학기술정책연구원 글로컬협력센터 소장 cglee@step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