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희숙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이나루티앤티 대표이사 hsnaru@e-naru.com
우리 회사는 2005년 삼성전자로부터 와이파이가 탑재된 스마트폰을 위탁 개발하면서 휴대폰과 와이파이가 결합된 탈통신의 미래를 준비해왔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지방도시에 와이파이 시범모델을 구축했고, 경찰청 자가망 표준 규격으로 선정된 혁신 기술도 보유하게 됐다. 그러나 우리 시장에 벽처럼 서 있는 각종 규제로 인해 판로가 막히는 등 많은 고통을 경험하기도 했다.
최근 아이폰 도입으로 국내 와이파이 인프라를 놓고 많은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부터 사용자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면서 지엽적인 통신망으로만 치부됐던 와이파이의 인식이 제고되고, 소프트웨어 인력들이 애플리케이션 개발의 주역이 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등 진정한 벤처 붐이 다시 일고 있다. 이 같은 생태계 변화가 좀 더 일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즈음에 규제에 대한 문제점과 융합과 통합을 위한 정책을 펼치니 기대가 된다.
전 세계에서 u시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도시를 수출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학회, 전문가그룹들이 표준을 선점할 기회를 갖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법·제도 문제에 발목이 잡혀 중요한 기회와 시장을 놓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다행히 정부에서 무선랜 투자에 종잣돈을 지원한다는 언론보도를 보았다. 무선랜을 활용한 상용화 제품, 전자정부, 치안교통, 재해재난, 에너지 절감, 신개념의 원격교육 등 현재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분야에 더 적극적인 규제 완화가 된다면 우리의 젊은이들과 중소기업이 더 큰 꿈을 이루게 될 것이다.
정부에서는 통합과 국제 수준에 맞는 표준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부처 간의 갈등으로 수직으로 묶여 있는 업무 형태가 여전하며 통합의 의미는 구호일 뿐이다. 모든 업무의 관제를 통합처리하면 엄청난 예산과 인력의 낭비를 줄일 수 있으며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 시장과 국민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부처 간 협력이 절실하다.
얼마 전 국세를 관장하는 국세청이, 기업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지식경제부가 전통적으로 관행되어온 입찰 조건을 개선했다. 입찰 시 9 대 1이라는 입찰 조건을 정리한 것인데, 이는 기술 지분을 보호하고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기술 혁신형 기업에 희망을 심어준 중요한 사례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자국 제품을 활용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다른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외국 장비를 선호하는 정부기관의 발주 관행을 대폭 개선해 실적이 없어도 인증된 기술을 기반으로 과감하게 채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나아가 신기술을 조기에 도입한 발주처의 감사를 줄이고, 성공모델을 이끌어낸 공직자에게 표창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양으로 승부를 걸지 않고 질로 평가되는 체계가 정착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크고 작은 정부 프로젝트에서 실력이 입증된 중소기업 제품을 패키징한 후 중소기업의 신뢰를 받는 대기업과 연계하는 모델이 정착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대기업의 이익도 늘어나는 한편 최선을 다하고도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던 중소기업의 현실도 개선될 것이다. 어느 단체장의 호소가 생각난다. “우리 중소기업을 무작정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다. 페어플레이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