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490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이 보낸 그리스 원정군은 낙소스·델로스섬 등을 정복한 후 아테네를 공략하기 위해 아티카의 북동 해안에 있는 마라톤 광야에 상륙했다. 결과는 아테네군에게 대패, 후퇴했다. 이에 아테네의 용사 페이디피데스는 마라톤 전장에서 아테네까지 약 40㎞를 달려 승첩을 알리고 절명한다. 마라톤 경주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생겨났다.
인간은 모두 시공간적 제약이 있는 환경에서 산다. 단순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한 병사는 40㎞를 뛰어야만 했고 끝내 그의 목숨까지도 바쳐야 했다. 기원전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러한 제약에 충분히 익숙하다. 비행기를 타고 5대양 6대주를 짧은 시간에 다닐 수 있는 문명의 이기를 누리게 되었지만 우리는 최근까지도 시공간적 제약을 극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현재의 우리 모습에서 이러한 시공간적 제약으로부터 매우 자유로워졌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정보를 얻기 위해 PC가 있는 책상까지 이동하는 시간도 필요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과거 기준에서 보면 현대인은 모두 슈퍼맨이다.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손가락 하나만 조금 움직이면 된다. 지금의 통신기술은 적토마보다 빠르고, 미국 국회도서관보다 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굉장한 문명의 이기를 과연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을까.
우리나라는 IT를 활용한 지식정보화의 우등생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브로드밴드 인프라 구축, CDMA 최초 상용화 등 우리가 IT강국임을 찬양하는 표현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우리가 IT를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는지는 또 다른 얘기다. 1차 IT혁명에 해당하는 시기에 우리는 늘 IT활용의 부진을 문제 삼았었다. IT가 업무의 효율성 향상과 실생활의 편의성 제고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진행 중인 모바일 혁명에서도 우리는 같은 우를 범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라는 강력한 기술이 우리의 생산성과 삶의 질을 제고하고, 정보역량을 강화하는 데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다면 스마트폰은 어른들의 비싼 장난감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서비스 산업의 성숙도가 낮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보다 확대돼야 한다. 스마트폰은 개개인의 서비스 접근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서비스 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증강현실과 연계된 주변 정보 제공쯤은 기본에 불과하다. 의료, 금융, 교육 등 다양한 서비스가 언제 어디서나 제공될 수 있다. 아울러 나에 대한 정보를 신용카드보다 더 많이 갖게될 스마트폰은 점차 내게 필요한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맞춤형 서비스도 가능케 할 것이다. 우리의 서비스 산업 역량이 다소 미흡하긴 하지만 강한 IT역량과 접목한다면 충분히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이러한 기회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IT와 서비스 산업의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야 하고 소비자의 의견도 많이 들어야 한다.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시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은 슈퍼맨이 그저 빈둥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슈퍼맨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해 보자.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 빼고는 많은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서비스 산업은 이러한 상상을 밑거름으로 한 단계 도약하게 될 것이다.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sjkwak@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