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IT코리아의 ‘유쾌한 도전’

 정말 대단한 승리였다. 90여분 내내 그리스를 압박했다. 이렇다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생각보다 이르게 터진 골 덕분이라지만 선수들은 우리만의 플레이로 경기를 지배했다. 기막힌 침투패스도 있었다. 2 대 0이란 점수도 아쉬울 정도의 경기 내용이다. 우리 대표팀의 월드컵 경기 중 이렇게 시종일관 압도한 경기를 이날 처음 봤다. 늘 그랬듯이, 이날도 마음을 졸이며 봤다. 곧 부끄러워졌다. 선수들 역량을 의심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승리 이후 다양한 분석이 쏟아졌지만 선수들의 자신감이 돋보였다. 큰 체격의 유럽 선수와 겨루면서도 당당했다. 시작하기도 전에 주눅이 들어 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옛 대표팀과 사뭇 달랐다. 차범근, 허정무 등 ‘가물에 콩 나듯’ 했던 해외파가 많아진 덕분인가. “프리미어리그도 K-리그와 별 차이 없던데요.”라는 기개가 이청용 선수만의 것은 아니리라.

 우리는 스스로 낮게 평가한다. 전쟁을 겪어 원조에 기댄 세계 최빈국이 불과 몇십 년 만에 세계를 돕는 부자 나라가 됐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일’이라는 민주주의도 이뤄냈다. 정말 세계에 자랑할 만한 자부심이 지금 온데간데없다. ‘IT’도 그렇다. 우리 역사에 이렇게 온 세계를 선도한 일이 없는데 1년 새 ‘아이폰’ 열풍에 ‘빛바랜 영광’일 뿐이라는 비판만 난무한다. 우리의 ‘초고속인터넷 인프라’와 ‘IT 제조업’은 여전히 세계가 목표로 하는 ‘현재진행형 영광’인데도 말이다.

 대표팀 선수들은 대부분 1980년대 생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땅에서 자랐다. 기성 세대가 ‘버릇없고 끈기 없다’고 폄하하는 이들은 그러나 기성 세대엔 없는 개성과 글로벌 시민의식을 가졌다. 기성 세대는 맨땅에 고속도로를 닦았다. 우리 사회가 더욱 역동적이 되려면 젊은이들이 이 도로를 마음껏 달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 IT산업도 마찬가지다. 최근 몇 년간 획기적인 IT벤처가 나오지 않는다고 걱정한다. 어쩌면 젊은 IT인들이 뛸 공간을 만들지 못한 우리 기성 세대의 책임이 크지 않을까.

 그리스전을 앞둔 허정무 감독의 출사표 가운데 ‘유쾌한 도전’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는 24년 전 마라도나를 온몸으로 막았다. ‘태권 축구’라는 조롱도 받았다. 허 감독은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온 축구 변방의 시골 선수가, 축구 강국을 맞아 유일하게 할 수밖에 없던 ‘필사적 축구’였다고 말했다. 그는 뒤의 23명 선수들과 또 그 뒤의 ‘붉은 악마’와 함께 세계 강호와 당당히 맞서, 달라진 우리 축구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했다. 바로 ‘유쾌한 도전’이다.

 우리 기성 세대가 해온 것이 ‘필사적 축구’였다면 우리 젊은 세대가 할 것은 ‘유쾌한 도전’이다. 이런 도전이 만에 하나 예선 또는 16강에서 그칠지 모른다. 그래도 ‘유쾌한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성취를 향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기성 세대와 자신감 속에 도전을 즐기는 젊은 세대가 제대로 소통 한다면. 모멸 속에 선진 기술을 익혀 IT산업을 일군 기성 세대와 IT 풍요를 누리고 창의적이며 글로벌한 사고의 젊은 세대가 조화를 이룬다면….

 신화수기자 취재담당 부국장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