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담합을 우습게 생각하는 한국기업](https://img.etnews.com/photonews/1006/100614094757_786658064_b.jpg)
얼마 전 우리나라 2개 반도체 회사가 유럽연합(EU)으로부터 2800억여 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이로써 우리 기업이 지난 5년여 동안 미국과 EU에서만 담합으로 부과받은 벌금액이 총 2조원 규모로 증가했다. 힘들게 번 돈을 벌금으로 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벌금은 우리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0여 년 동안 모든 법 위반 행위에 대해 부과한 과징금 총액이 2조5000여 억원인 점을 감안할 때 엄청난 금액이다. 해외 시장 규모가 크다 보니 위법행위에 대한 벌금이 막대할 수밖에 없어 기업 입장에서 하루빨리 개선해야 할 문제다.
이와 관련해 먼저 담합에 대한 법집행의 국제동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난 4월 말 터키 이스탄불에서 85개국 약 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제경쟁정책회의(ICN)가 열렸다. 이 회의는 각국의 경쟁법과 경쟁제도의 차이를 축소하면서 집행을 강화하기 위해 2001년부터 개최해 올해로 9회째다.
이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는 담합에 대한 법집행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올해에도 많은 국가가 담합을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위한 각종 제도와 조사기법 등을 소개했다. 그리고 모든 국가가 담합에 대해 공동보조를 맞추어 엄중히 제재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같은 경향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들은 담합에 대해 아주 관대한 실정이다. 예컨대 담합행위가 적발되면 이런저런 이유나 구실을 찾는 데 열중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고 있다.
경쟁업체의 직원들끼리 모여서 가격 정보를 논의하고도 대부분 "모인 것은 사실이지만 가격에 대해 논의한 사실은 없다"고 극구 부인한다. 또 "그런 행위가 담합이라면 영업하지 말라는 것"이라거나 "단지 원가가 비슷해 가격이 우연히 같아진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한다. "다른 정부기관의 행정지도를 따른 것이지 담합한 것이 아니다"라는 핑계도 흔하다.
분명한 것은 미국이나 EU에서 이런 이유나 핑계가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18세기 애덤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동업자가 어쩌다가 회합을 하는데, 그 회합은 소비자에게 좋지 않은 공모로 항상 끝난다"고 이미 간파했다.
경쟁사 직원들이 함께 모이거나 이메일 등을 교환하면서 담합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은 담합행위를 철저히 개선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오늘날 세계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총성 없는 전쟁에 비유한다. 이러한 경제 전쟁에서 경쟁법은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되었고, 특히 담합은 이제 세계 어디에서도 통용될 수 없게 됐다. 내년 5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되는 제10회 ICN회의는 `평화 그리고 정의`를 기치로 내걸었다. 이것은 담합에 대한 엄중한 제재가 세계경제질서의 `정의`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철호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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