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연내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채널) 사업자 선정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이달 중 방송ㆍ경영ㆍ법률ㆍ회계 등 분야별 전문가로 자문단을 구성해 운영한다.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신문 부수확인ㆍ인증기관을 지정하고 시청점유율 산정 기준도 마련할 방침이다. 아울러 사업자 수, 선정 방법 등 종편 사업자 선정과 관련한 의견 수렴 작업에 나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언론학회가 17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주최한 `종편채널의 합리적 도입 방안` 세미나에서는 △종편 사업자를 한 곳만 선정하자는 주장과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업자에게 사업권을 주고 자유시장 경쟁 원리에 따르자는 `시장경쟁론`을 놓고 열띤 공방이 벌어졌다.
종편채널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가장 큰 관심사는 `사업자 수`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언급한 것처럼 △1개 △2개 △3개 △4개 △일정 기준에 충족하면 선정하는 방안 등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 중 1개나 2개를 선정하면 특정 언론사로 몰아줬다는 특혜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며 거대 지상파 방송사와 종편채널 간의 건전한 경쟁 구도를 만들기 힘들다는 주장이 나온다.
반면 느슨한 선정 기준을 내놓고 희망하는 사업자에게 모두 종편 사업권을 줬을 때는 생존 가능성과 종편 운영 능력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는 선정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
이날 세미나 발제문에서 권만우 경성대 교수는 "가장 우수한 점수를 받은 1개 컨소시엄을 선정하는 게 성공 확률을 높이고 혹시 실패했을 때의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복수 사업자가 필요하다면 일차 선정한 후 향후 추이를 보고 추가로 선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류호길 매일경제 종편추진본부 사무국장은 "1개 사업자를 선정하는 방식은 특혜 시비를 피하기 어렵고 선정된 사업자의 경영능력이 문제가 되면 곧바로 정책 실패로 이어지게 된다"고 밝혔다.
류 국장은 이어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춘 사업자가 자기 책임 아래 사업을 하도록 하면, 특혜를 기대하고 준비하는 사업자들이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돼 사업자 난립의 우려도 해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정민 전남대 교수는 "일정한 자격 요건을 정한 뒤 이 기준에 맞는 사업자가 다수라면 다수를 선정하고, 없으면 하나도 선정하지 않으면 된다"면서 "정부가 특정 숫자를 정하는 근거가 과연 무엇이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종편 희망 사업자 중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업자로 판정받은 회사에 사업권을 주는 `준칙주의(discipline principle)`가 힘을 얻었다. 무엇보다 정부가 준칙주의 방식을 선택하면 특혜 시비가 최소화되고 자율 경쟁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자기 능력으로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살아남거나 도태될 수 있는 구도가 만들어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노기영 한림대 교수도 "특혜 시비를 불러올 수 있는 비대칭적 규제보다는 능력과 자원을 가지고 승부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종편 채널 도입은 기존의 보호주의적 방송시장 기반에서 시장주의 기반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김동규 건국대 교수는 "종편 선정 과정에서 정치적 논리를 얼마나 배제할 수 있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윤석민 서울대 교수는 "지상파 방송 3사가 케이블TV 시장에서도 각각 4~5개 전문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며 "전체 180여 개 전문채널 가운데 지상파 계열 채널의 점유율이 40%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상파의 독과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또 `TV 동물농장`이 6개 채널, `무한도전`이 7개 채널, `세바퀴`가 6개 채널에 나가고 있다고 언급해 유료방송 시장에서 새로운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신문사의 방송 진출에 회의적인 견해도 제기됐다. 사회를 맡은 최양수 연세대 교수는 "스마트폰, 아이패드, 스마트TV가 등장하고 있다"며 "멀티미디어 진화 과정에서 종편 등장이 적합한지, 역행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은 "방송산업 활성화 수단이 종편 채널밖에 없느냐"고 반문한 뒤 "현재 미디어 환경과 기술 발전에 맞게 신문이 적응하는 형태가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종편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사업자의 재무능력을 엄격히 심사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빚을 얼마나 지고 있는지, 담보는 얼마나 잡혔는지, 자산에 대한 감각상각은 어느 정도 됐는지, 추가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 능력, 신용등급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는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라 본 회사뿐만 아니라 지분관계에 있는 계열사나 자회사까지 연결시켜 재무적 능력을 파악하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다.
■ "심사항목 계량 점수화 하자" 권만우 경성대 교수 제안
종편 사업자 선정 기준과 절차는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투명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학계와 업계에서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업자 선정 이후 반발이 일거나 한 점의 의구심도 남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권만우 경성대 교수는 언론학회 세미나에서 정량평가 지표 개발을 제안했다.
권 교수는 "종편 채널 최초 허가는 평가의 대항목(심사사항)이 문제가 아니라 세부 심사 항목에 대한 지수개발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며 "정량평가 항목에 대한 비중을 높임으로써 객관성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자의 경우 정성평가 점수가 500점 만점 중 430점에 이르며 정량평가가 70점(14%)에 불과해 누가 봐도 심사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이 큰 변수가 됐다고 볼 수 있다는 것.
권 교수는 "정량평가지수를 다수 개발해 누가 봐도 수긍할 만한 비율, 예를 들어 최소한 지상파 방송이나 일반 PP 재허가 기준 이상인 50~60% 이상이 되지 않을 경우 심각한 사후 논란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심사위원은 사업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은 모두 제외하고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로 선정해야 한다. 또한 재무ㆍ기술ㆍ콘텐츠 등 각 분야에 특화된 전문심사위원들의 자기 분야 점수는 가중치를 두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권 교수는 "심사위원 선정 시 학력ㆍ출신ㆍ직업 등 일정한 기준에 근거해 편중되지 않아야 공평한 심사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며 "이러한 위원들이 선임될 수 있도록 위원회 내부 지침이나 매뉴얼이 미리 작성돼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심사위원 선임은 방통위 의결사항이므로 심사위원들의 성향과 배경 등에 대한 사전정보가 명확히 방통위원들에게 전달돼 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 일부 언론사 토론 불참…발제문 막판에 수정도
17일 종편 세미나는 당초 패널로 참석키로 했던 언론사 관계자들이 무더기로 불참해 그 배경을 놓고 여러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날 세미나에는 매일경제를 비롯해 조선일보ㆍ중앙일보ㆍ동아일보ㆍ한국경제 등 종편 선정 과정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언론사들이 모두 참석할 것으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행사 시작 전에 조선ㆍ중앙ㆍ동아일보의 토론자들이 잇단 불참을 통보했다.
언론계 한 관계자는 "토론자들이 사전 준비 차원에서 권만우 경성대 교수의 발제문을 받아본 뒤 그 내용을 문제삼아 불참을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발제문의 주요 골자가 특정 언론사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 세미나의 들러리를 서지 않겠다는 계산이라는 게 언론계 일각의 관측이다.
또한 주제발표와 궤를 같이한 해당 언론사도 여러 정황을 고려해 불참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학계의 미디어경제 분야 전문가인 김동규 건국대 교수, 노기영 한림대 교수 등이 토론자로 긴급 투입됐다.
발표자로 나선 권만우 경성대 교수는 당초 발제문에 "적자기업, 유동성에 문제가 있는 기업, 현금화 어려운 부동산 등을 처분해 출자자금을 준비하는 기업,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에 속한 기업, 단기간에 개인이 출자해 신용평가를 하기 어려운 기업에 대한 판단을 변별력으로 삼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아 특정 언론사 2곳을 겨냥한 항목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토론장에 배포된 자료집에서는 이 부분이 빠졌다.
이날 세미나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길 정도로 토론 참여자들의 의견 개진이 활발히 이뤄졌으며 7월 예정된 방송학회 주최 종편 세미나에서도 열띤 토론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 용어설명 >
준칙주의(discipline principle) : 법률이 정한 법인 설립에 관한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법인으로 인정하는 주의. 종합편성 채널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업자에게 사업권을 주고, 시장원리에 맡겨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의미다.
[매일경제 윤상환 기자 / 황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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