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의 대중화, 모바일인터넷디바이스(MID)의 출현으로 전자부품 업계에 ‘변화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국내외 세트업체들은 사업 전략을 잇따라 수정, 개편하면서 시장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특히 부품 조달을 포함한 공급망관리(SCM)체계를 확 바꾸기 시작했다. 이에 잘 대응한 부품업체들은 새 기회를 창출하지만 그렇지 못한 업체들은 소리없이 사라질 판이다. 세트산업의 변화가 글로벌 전자부품 업계 지도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우리나라 부품 산업엔 어떤 위기와 기회로 작용할지 세 차례에 걸쳐 분석한다.
중국·대만 부품업계가 글로벌 세트업체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애플 아이폰 등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이 대만·중국서 조달된다. 폭스콘을 비롯한 중화권 전자제품 전문생산기업(EMS)은 눈부신 성장세를 누린다. 새로운 세트산업으로 떠오른 태블릿PC의 핵심 부품까지 중화권 기업들 차지다. 차이완 부품업체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뛸 수 밖에 없다.
차이완 부품의 힘은 좋아진 품질과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가격 경쟁력에서 나온다. 특히 중국산 부품이 품질이 개선되면서 일본과 대만, 한국 중심의 부품 산업 구도에 새로운 균열을 일으켰다.
삼성전자가 애플 아이폰4G에 충격을 받은 것 가운데 하나가 지문 등 이물질이 화면에 덜 묻어나는 안티핑거(AF) 강화유리다. 애플이 이를 먼저 적용한 것도 놀랍지만 중국 부품 업체인 렌즈가 공급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중국산 부품의 품질은 아직 우리나라 부품보다 낮은 편이다. 하지만 추격 속도는 급속도로 빨라질 것으로 예상됐다. 중국 정부가 부품 산업을 집중 육성하면서 품질이 개선되는 데다 글로벌 기업이 원가 경쟁력이 우수한 한국산 제품과 경쟁하기 위해 중국산 제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중국 부품 업체는 주문이 늘어나면서 ‘규모의 경제’도 이룰 수 있다.
중국기업보다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는 대만 부품업체들은 물량 확대라는 새 기회를 잡았다. 글로벌 세트업체들의 SCM 체계 변경 덕분이다.
스마트폰에선 애플에, 휴대폰에선 삼성에 쫓기는 노키아는 올 3분기부터 SCM정책을 확 바꾼다. BYD·폭스콘·라이트온 등 전자제품 전문생산기업(EMS)에 노키아는 부품 조달이나 납품가 결정을 대폭 위임했다. 대부분 대만 업체인 EMS들은 거래관계가 많은 대만과 중국산 부품 조달량을 지금보다 더 늘릴 가능성이 높다. 특히 양안 관계 개선을 계기로 대만과 중국의 첨단 부품 산업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중국산 부품의 약진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애플이나 노키아에 부품을 공급해온 한국 업체들은 위기다. 차이완 부품의 약진에 조달 기회 자체가 적어지는 데다 판가 인하 압력은 더욱 거세어질 수 있다. 국내 부품 업체가 외국계 다국적 기업에 납품하는 조건이 그간 국내 전자 대기업보다 좋은 편이었다. 이런 매력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국내 전자 대기업마저 차이완 부품에 눈길을 돌린다는 점이다. 국내 전자 대기업이 갈수록 심해지는 글로벌 경쟁 속에 경쟁사보다 원가 경쟁력을 더 확보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 경영진이 대만 부품 업체를 방문한 것이나 LG전자 TV사업 조직이 중국산 부품 연구에 집중하는 것은 바로 이런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부품 업체 사장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새 세트산업이 부상하면서 발 빠르게 가격과 품질 수준을 높인 중화권 부품업체들이 세계적인 조명을 받는다”라면서 “국내 세트업체들이 중국과 대만 부품 구매량를 늘리면서 국내 부품 산업에도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국내 대기업보다 납품가를 높게 쳐주는 다국적 기업에만 납품해온 부품 업체나, 납품 단가는 낮아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공급량을 약속받았던 부품업체 모두 생존 위기에 직면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