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족네트워크 대표 leejung@gmail.com
비가 내린 뒤끝이라선지 신의주가 바라보이는 압록강변에는 물안개가 자욱하다. 안개 너머로 보이는 저 북한과의 교류협력사업에 매달려온 사람들은 지금 착잡한 심정을 가눌 수 없을 것이다. 제3국에서 북한인력을 활용해온 사업자들에게도 천안함사건 후폭풍이 몰아닥쳤다. 한순간에 사업을 접어야 하는 사태에 이른 까닭에 그저 허망하기만 하달까.
지금까지 북한 전문인력을 활용해 제3국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사업자들은 나름대로 보람을 느껴왔다. 정부의 교류협력정책에 이바지함은 물론이고 회사 이익창출에도 적지 않은 보탬이 되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많은 북한 전문인력을 고용해온 A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우리 회사는 연간 매출액이 500억원 정도되는 작지 않은 회사다. 그러나 이른바 SKY라고 불리는 상위권 대학 출신자들이 우리 회사에는 입사하지 않는다. 그래 봐야 중소기업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소프트웨어개발사업은 고급두뇌가 필요한데, 이들 학교 출신자들은 설령 입사한다 해도 곧 나가버리고 만다. 그런데 북한인력을 활용하니까 인건비 절감은 두말할 나위 없고, 고급인력을 안정적으로 개발사업에 투입할 할 수 있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남북간 소프트웨어개발사업은 이 분의 말이 그 효용성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제3국에서 북한인력을 활용하는 회사들은 대부분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것이다. 무슨 헛소리냐고 불만을 토로하는 회사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남북 인력간의 직접 접촉이 지극히 제한적이고, 개발사업이 1년쯤 지속되어 일에 익숙해질 만하면 북한측이 인력을 교체해버린다고 하소연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대체로 남북사업에 대한 경험 부족과 아울러 서로 신뢰하는 기반을 조성하지 못한 탓도 크다.
그런데, 지금 제3국 북한인력 활용 사업자들은 천안함사건 결과 발표 이후 완전히 뒤바뀐 통일부의 교류협력정책에 날벼락을 맞았다. 통일부는 개성공단사업을 제외한 일체의 다른 교류사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제3국에서 제3국 회사 명의로 소프트웨어 개발사업을 한다 해도 이젠 사업을 중단해야만 하는 형편이다. 개발사업의 주체가 어디까지나 남북한인 까닭에 한국인과 북한인의 접촉이 필수조건인데, 통일부는 이제 협력사업자 승인은 고사하고 남북교류의 가장 초보적인 수단이 되는 북한주민 접촉 승인조차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는 한마디로 제3국에서 진행하는 개발사업을 접으라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실제로 제3국에서 북한인력을 활용하는 회사들은 정부의 정책에 따라서 북한주민접촉 승인의 남은 날짜를 헤아리며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당장 뜻하지 않은 큰 손실을 감당해야만 할 처지다. 천안함사건이 남북관계를 최악으로 끌고 간 상황에서 회사의 이익만을 앞세워 우는 소리를 낼 수도 없어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정부정책에 호응하여 그동안 교류사업을 진행해온 것인데, 천안함사건에 따른 정부의 정책변화가 너무 갑작스러워 허탈하기 짝이 없다. 누가 이처럼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제3국 협력사업자들의 처지를 알아줄 것인가. 정부가 대책으로 내놓을 카드는 따로 없을까. 창밖으로 보이는 압록강변의 안개는 사업자들의 깊은 근심처럼 짙어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