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진의 무한혁신]<14> 디지털 무한혁신과 디자인

 애플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스티브 잡스와 더불어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사람은 바로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스다. 애플의 성공은 스티브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스의 결합, 곧 기술경영과 디자인의 결합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말하곤 한다. 그럼 도대체 디자인은 무엇이고 디지털 혁신에서 디자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흔히 디자인을 얘기하면, 제품의 모양·재질·색깔, 또는 소프트웨어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을 생각하기 쉽다. 좀 더 폭넓게 디자인을 생각하면, 수많은 콘텐츠뿐 아니라 애플리케이션과 아이폰을 연결해주는 아이튠스와 같은 생태계를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요소들이 애플의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의 한계는 디자인을 단편적인 명사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명사로서의 디자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게 해주는 동사로서의 디자인이다.

 그럼 동사로의 디자인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디자인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좀 더 노력을 하면 언제나 현재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하는 믿음에 바탕을 둔다. 다시 말하면, 디자인은 주어진 상황의 개연성에 대한 긍정적 믿음에 근거한다. 따라서 동사로서의 디자인은 주어진 제약조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것을 창조적으로 변화시킨다. 둘째, 동사로서의 디자인은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탐구를 바탕으로 한다. 한 제품의 본질과 그 가치에 대한 이해는 기존의 틀을 부수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는 맹목적인 파괴와는 기본적으로 목표가 다르다. 기존의 틀을 하나씩 파괴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본질을 잃지 않고는 더 이상 파괴할 수 없는 순간에 도달한다. 그때, 우리는 그 본질을 발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강의 중에 학생들에게 밥그릇을 그려보게 하곤 한다. 그리고 그 밥그릇을 점차 납작하게 만들어 보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학생들은 자신이 그린 물건이 더 이상 밥그릇이 아니고 접시가 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계획적 파괴를 통한 본질의 발견인 것이다. 셋째, 디자인은 인간경험 중심의 존재적 가치를 그 출발점으로 한다. 존재적 가치란 어떤 것의 가치를 그 존재 자체에서 찾는 것을 말한다. 이는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을 지배하고 있는 도구적 가치와 구분이 된다. 도구적 가치체계는 한 사물의 가치를 그것이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수단으로서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모든 가치는 존재적 가치에서 출발한다. 오랜 친구와 술 한 잔을 기울이며 밤새워 나누는 이야기, 사춘기를 지나는 아들이 쓴 편지 한 장,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 나만을 믿고 따르는 강아지와 매일 걷는 산책, 이 모든 것의 가치는 도구적으로는 측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이 일상생활의 영역으로 들어가면서, 디지털 기술은 더 이상 단순한 삶의 도구가 아니다. 삶의 깊은 구석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디지털 기술을 존재론적 가치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동사로의 디자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