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을 만드는 여인들, 스마트폰에 섬세함·따뜻함을 입힌다

요즘 20~30대 두셋만 모이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얘기다. 남녀 할 것 없다. 신기한 앱의 기능을 숙지하고 나면 `이런 소프트웨어를 만든 사람이 누구일까`로 관심이 이동하게 되는데, 일단 남자 개발자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앱으로 대박 낸 개발자 중 여성도 적지 않다. 여성만의 섬세함과 센스를 앱에 담는 것이 히트 비결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앱의 세계로 뛰어드는 여성도 늘고 있는 추세다. SK텔레콤의 앱 개발 교육과정인 `T 아카데미` 수강생도 30~40%가 여성이다. 졸업작품전 1등도 여성이었다. 앱 분야에서도 `여풍당당(女風堂堂)`이라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 앱개발 여성에게 천직

=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이 함께 준비하는 앱스토어 메인 파트너인 프람트의 주현선 부사장(44)은 국내 대표 여성 앱 개발자 가운데 한 명이다. 프람트(Prompt)는 과거 도스(DOS) 운영체제일 때 파란색 컴퓨터 창에서 하얗게 깜빡이는 커서를 말한다. 연극에서 대사를 미리 보여주는 길잡이라는 의미도 있다.

서울 양재동 프람트 본사에서 만난 주 부사장은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감수성이 풍부한 여성들에게 앱 개발은 천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프람트는 지난해 안드로이드와 바다 운영체제(OS) 기반의 스마트폰 앱을 베를린 전시회에서 선보였다.

주 부사장은 "독일 아이들이 프람트에서 만든 토끼가 당근을 뽑는 게임을 너무 좋아해 매일 전시장을 찾는 모습을 보며 흐뭇했다"고 말했다. 당근 뽑기 게임의 키포인트는 토끼가 실패했을 때 울상 짓는 귀여운 표정. 이는 주 부사장이 여성의 섬세한 감각을 동원해 스무 번이나 넘게 다시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한 결과 탄생한 작품이다.

프람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이상구 교수와 전종훈 프람트 사장이 산학 벤처로 2001년 창립한 회사다.

전종훈 사장은 주 부사장의 남편.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한 주 부사장이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컴퓨터사이언스를 공부할 때 전종훈 사장을 만나 결혼했다. 주 부사장은 "한국인 공대생이 당시 100명이었는데 여자는 나 혼자였다"고 회상했다.

프람트에서 앱을 개발하기에 앞서 주 부사장은 웹에이전시 클라우드 9의 총괄 부사장을 역임하며 대한항공과 르노삼성 등의 웹 페이지를 기획하고 디자인했다.

그녀는 "많은 기업을 상대로 웹서비스 경험을 쌓은 것이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에 탑재될 프람트의 앱은 이달까지 80개국, 하반기에는 100여 개국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주 부사장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배려를 곳곳에 녹여가며 개발 작업을 총괄하고 있다.

주 부사장은 "앱 개발을 잘하는 회사, 디자인을 잘하는 회사도 많지만 어떻게 고객들을 대하고 서비스하는지 균형감을 갖춘 회사는 드물다"며 "일을 무조건 많이 하기보다는 남들이 못하는 일을 잘하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 자기계발형 앱

= 주현선 부사장이 회사 단위의 앱 개발자라면 박혜정 씨(35)는 대표적인 여성 개인개발자로 통한다. 스마트폰인 옴니아2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물추리` 앱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물추리는 물고기+ 추리력의 줄임말이에요. 깜찍한 물고기들을 보여주고 그에 맞는 특징을 알아맞히는 OX 퀴즈입니다. 논리의 요소를 퀴즈를 통해 개념적으로 익히는 자기 계발형 앱입니다."

미대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박혜정 씨는 게임회사에서 그래픽과 캐릭터 작업 등을 하다 2006년부터 모바일 관련 업체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기획과 디자인 업무를 한 경험을 토대로 물추리 앱을 만들어낸 것이다.

박혜정 씨는 "모바일 플랫폼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개인개발자로서는 각각의 플랫폼에 맞는 제품을 내놓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며 "남성 개발자들이 여러 날 밤을 새우고도 멀쩡한 것과 달리 여성들은 체력적 한계가 일찍 오는데 그것도 하나의 어려움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개인개발자로서의 한계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한다. 앱 완성도가 점차 높아지면서 혼자서 앱을 만들어 `대박`을 터뜨리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것.

그는 "해당 카테고리에서 최소 1~3위에는 들어야 앱으로서 돋보일 수 있다"며 "기획단계부터 디자인, 프로그래밍 등에서 체계적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여성의 센스와 섬세함은 앱 개발의 큰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여성의 구매력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시장을 이해하고 앱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에서도 여성이 우수성을 발휘하고 있다"며 "여성개발자만의 장점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앱 사운드는 내 몫

= 송희승 SPN홀딩스 대표(36)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에서 `소리`를 전담하고 있다. 이화여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박사과정까지 밟으며 작곡가로서 활동도 병행한 경험을 고스란히 녹여 모바일 시대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송 대표는 지난해 7월 지인 3명과 SPN홀딩스를 차렸다. 이 회사는 광고음악과 아이폰 게임 음악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송 대표는 "이미지나 디자인 구현도 중요하지만 공감각에 호소하는 애플리케이션에서 소리는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을 준다"고 했다.

그가 애정을 갖고 있는 애플리케이션은 직접 제작에 참여했던 불리(Booooly). 같은 색깔을 가진 구슬 방울을 터뜨리는 게임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은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한 게임 중 하나다.

애플리케이션 개발기업인 그레이삭스에서 내놓은 드럼 마이스터(Drum Meister)의 사운드 작업에도 참여했다. 여러 장르의 드럼 연주를 듣고 따라해 보고 자신의 연주를 녹음해 들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다.

송 대표는 "한국의 명산이란 다큐멘터리 음악감독을 맡는 등 한국적인 소리를 현대음악에 적용하는 작업을 많이 해왔다"며 "드럼 마이스터에도 뮤지컬 난타에서 들음 직한 다양한 타악기 소리를 입히는 후속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젊은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이 모이는 모임멤버 50명 중 여성은 아직 5명에 불과해 아쉽다"며 "다양한 소리에 민감하고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차이를 잘 포착할 수 있는 여성들이 활약할 공간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개발 중인 애플리케이션 작업에 여념이 없다. "아이폰으로 면도하는 장면을 시늉 내면 정말로 아이폰에서 면도기 소리가 들리는 코믹한 프로그램이에요. 스무 가지가 넘는 일상적인 동작에서 나오는 소리가 주는 유쾌함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한 번 다운로드받는데 0.99달러인 이 애플리케이션 수익 중 20%는 송씨에게 돌아간다.

[매일경제 이승훈 기자 / 서유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