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입찰제안서(RFP)에 장비 업체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입찰 조건에 특정 업체가 사용하는 용어를 기술하거나 특정 기술을 요구하고 제품의 크기를 기준으로 내세운 사례도 있다.
해당 업체가 직·간접적으로 공공기관의 제안서 작성에 관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업체와 공공기관 담당자의 ‘담합’ 의혹까지 제기된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공공기관 IT담당자의 전문지식 부족이나 장비 업체의 영업으로 인해 특정 업체에 유리한 용어나 규격(스펙)이 그대로 반영돼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진행된 국책은행의 신규 네트워크 장비 발주에서는 ‘에너지 와이즈’라는 단어가 사용됐다. 저전력·고효율을 의미하는 일반명사인 것 같지만 한 미국 통신장비업체가 쓰는 ‘브랜드’ 이름이다.
모 지방경찰청의 디지털 주파수공용통신(TRS)인 테트라(TETRA) 휴대용 단말기 구매 과정에서는 꿆정 업체에 유리한 기술이 배점 항목에 들어갔다. 제안서에 기재된 ‘광역기지국 우선 선택 기능’은 디지털 주파수공용통신(TRS) 표준인 테트라(TETRA) 표준규격도 아닌 소수 업체의 신기술이다. 또 다른 지방청이 최근 진행하는 IP교환기 구매에도 특정 업체가 그대로 거론됐다.
프로젝트와 관련 없는 기능을 스펙에 반영한 공공기관도 있다. 이 공공기관은 초고속국가망을 제외하고는 잘 사용하지 않는 MPLS와 같은 기술을 반영해 특정 업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됐다.
또 중앙부처에서 진행하는 수백억원대 정보통신망 구축 프로젝트에도 특정 외국 업체의 다중서비스지원플랫폼(MSPP) 사양이 들어갔다는 소문이다.
이 같은 관행은 네트워크연구조합이 지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조달청 나라장터에 올라온 3000만원 이상 공공 프로젝트 입찰제안서(RFP) 200여건을 분석한 결과에도 잘 나타난다.
분석 대상 중 특정 회사명이 언급된 사례가 14%다. 특정 제품명을 쓴 경우도 15%에 달했다. 특정 업체의 OS와 같은 특정 솔루션·부품명이 사용된 경우도 16%에 달했다.
업체 관계자는 “특정 기능이나 인터페이스 등이 직접 언급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며 “전문몼이 부족한 각 기관 IT 담당자들이 제안서 작성 등에 업체 관계자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히 “이런 과정에서 부적절한 관계가 형성될 개연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구교광 네트워크연구조합 사무국장은 “공공기관 발주부터라도 제안요청서를 내기 전에 적정성을 평가할 전문가 그룹이나 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특정업체의 제품 등 용어를 업계에서 일반명사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용어조차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간혹 걸러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표> 공공기관 입찰제안서 분석 현황
*자료: 네트워크연구조합, 2006~2008년 조달청 입찰제안서 분석자료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