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진의 무한혁신]<끝> 디지털 혁신과 리더십

지난 15주 동안 디지털 기술이 가지는 무한혁신의 특성을 중심으로 그 가능성과 디지털 무한혁신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조직역량을 생각해 보았다. 디지털 무한혁신은 단순히 기술력도, 반짝이는 개인의 창조성의 결과도 아니다.

디지털 무한혁신은 디지털 기술이 가지는 두 가지 특성이 비(非)디지털 제품과 결합해서 이루어진다. 첫째는 디지털 기술이 가지고 있는 열려있는 가능성 그 자체다. 디지털 기술의 적용 한계는 바로 우리 상상력의 끝이다. 두 번째 디지털 기술이 가지고 있는 열려 있는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그 기술이 디자인되고 소비되는 공간을 열린 생태계로 만들어야 한다. 열려 있는 생태계를 통해 개인의 상상력 범주가 극대화될 수 있다. 결국 이 두 가지는 기술력의 문제라기 보다는 궁극적으로 리더십의 문제다.

디지털 혁신을 바라보는 많은 기업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디지털 무한혁신이 요구하는 리더십이 과거 산업화시대의 리더십과 근본적으로 모습이 다르다는 데에 있다. 과거에는 뚜렷한 비전과 과단성 있는 추진력이 뛰어난 리더십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기업이 만들어 내는 제품의 본질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에 맞춰 조직의 구조와 전략이 카멜레온과 같이 바뀌어야 하는 오늘날에 있어서, 뚜렷한 비전과 과단성 있는 추진력은 지속적인 성과를 내기 보다는 단기적인 효과만을 내고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해가 될 가능성이 많다. 전화가 더 이상 전화가 아니고, TV가 더 이상 TV가 아닌 의미파괴를 주도해 나가야 하는 기업들에 장기적인 제품의 로드맵과 뚜렷한 기술의 비전은 오히려 디지털 혁신에 필요한 유연성과 역동성에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디지털 무한혁신을 추구하는 기업을 나는 맹인이 등산하는 모습에 비유하곤 한다. 맹인은 자신이 오르는 산의 정상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하얀 지팡이 끝을 통해 내가 다음번에 발을 올려놔야 할 곳만을 찾을 수 있다. 그곳에 발을 올리면, 맹인은 다시 자신의 지팡이로 그 다음번 올라갈 곳을 탐색한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무한혁신을 위해 경영자는 부단히 자기가 서 있는 곳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내가 다음 발을 디딜 곳이 어딘지 찾고 또 찾아야 한다. 한번 찾은 길이 앞으로 계속 올라갈 길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맹인이 오르고자 하는 산은 움직이지 않지만, 디지털 무한혁신의 산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어쩌면 결코 오르지 못할 산이다. 그러나 그 산을 향해서 계속 나가는 것이다.

이런 디지털 혁신을 위한 리더십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리더에 대한 기대가 바뀌어야 한다. 리더들이 모든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가지고 있고, 그 답을 과감성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대신 리더들은 질문을 던지고, 명쾌해 보이는 듯한 상황에 계속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조직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고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최고경영자(CEO)는 디지털 혁신시대에 걸맞지 않는 타이틀이다. 최고질문책임자(CQO)가 적절하다 싶다. 그러나 과연 이와 같은 리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기업이 얼마나 있는지 그것이 의문이다.

유영진 템플대 경영대 교수 yxy23y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