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 101개 PP 매출 50억미만, 66개 자본잠식

◆ 미디어 빅뱅 (제1부) / 지각변동 시작되는 미디어지형 ◆

10년째 케이블에서 방송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A사장. 요즘 채널 매각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리얼리티 장르로 나름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지만 불어나는 적자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채널을 론칭했을 때부터 이어진 적자는 현재 수십억 원에 이른다.

특히 수년 전부터 위성방송, IPTV 등으로 프로그램 채널을 확대했지만 수익은 여전히 마이너스다. 방송 콘텐츠를 공급했지만 제대로 값을 받지 못한 탓이다.

A사장은 "방송 콘텐츠를 만들면 만들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라며 "현재 지상파 계열 PP를 제외하면 수신료도 턱없이 낮고 콘텐츠 수수료도 거의 받지 못해 사업을 끌고 갈 수 없다"고 말했다.

◆ 죽지 못해 산다

= 국내 방송채널사업자(PP) 업계는 영세하다는 말보단 열악하다는 단어가 어울린다. 지상파 계열이나 CJ, 티브로드 등 대기업 계열 PP는 상황이 조금 낫지만 한 개나 두 개의 PP를 운영하고 있는 개별 PP는 정말 상황이 심각하다.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산업 실태를 조사한 결과 179개 개별 PP 중 56%인 101개 PP의 매출이 50억원 미만이었다. 93개 PP는 당기순손실을 냈다.

이 중 66개 PP는 자본잠식 상태다. 개별 PP로 들어가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등록된 개별 PP 147개사의 지난해 전체 매출은 2996억원이었지만 순이익은 56억원 마이너스였다.

또한 147개사가 2996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셈이어서 한 회사의 평균 매출이 20억원에 불과하다.

반면 KBS, SBS, MBC 등 지상파 계열 PP는 2009년 4517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순이익도 188억원에 달해 양극화가 심함을 보여줬다.

이런 열악한 상황이 벌어진 이유는 `지상파에 치우친 왜곡된 방송 시장`에 기인한다. 모든 미디어 플랫폼 사업자들이 지상파 방송 재전송에 올인하고 이를 위해 매년 수백억 원 이상을 쏟아붓다 보니 정작 유료 방송만 존재하는 PP에는 쓸 돈이 없다.

이 때문에 국내 PP들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보다 외부에서 프로그램을 구매해 방송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한 번이라도 콘텐츠를 제작한 채널은 전체의 절반에 불과하다. 방송통신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187개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중 자체 제작 실적이 있는 곳은 전체의 51%인 96개다.

PP업계 관계자는 "자체 제작은 향후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지상파 방송을 편성하고 싶지 않아도 수익이 나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 빈곤의 트라이앵글

= 상황이 이렇다 보니 투자도 더딜 수밖에 없다. 더딘 투자는 낮은 시청률로 이어지고 낮은 시청률은 수익 악화로 직결된다.

현재 개별 PP들은 콘텐츠 개발에 전혀 투자를 못하고 있는 상태다.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고화질(HD) 콘텐츠가 확산되고 있지만 정작 대부분 개별 PP는 이에 대한 대비를 못하고 있다. HD방송은 일반 디지털보다 화질이 2.5배 정도 선명하지만 제작비용이 1.5~2배 비싸다.

실제 189여 개 국내 PP 중 100곳 이상이 고화질(HD) 방송을 전혀 제작하지 못하고 있다.

케이블방송이나 위성방송, IPTV 등 유료방송에 HD방송을 내보내는 곳은 KBSㆍMBCㆍSBSㆍEBS 등 지상파 방송사를 포함해 불과 30여 곳. 나머지 PP들은 사실상 HD콘텐츠를 전혀 제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PP 사장은 "HD콘텐츠가 좋다는 건 알지만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라며 "지금과 같이 HD 투자가 지상파 위주로 단행되면 국내 방송 생태계가 균형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제작의 열악함은 수출길도 막고 있다. 보여줄 게 없으니 팔 것도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2008년 미국 PP의 수출액은 92억달러인 데 비해 국내 PP의 수출은 280만달러였다. 미국의 0.03%다. 이는 지상파를 포함한 국내 전체 방송 콘텐츠 수출의 5% 수준이다.

[특별취재팀=매일경제 윤상환(팀장ㆍ문화부)기자 / 황인혁 기자 / 손재권 기자 / 이승훈(이상 산업부) 기자 / 한정훈(MBN)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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