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브라질의 유료 방송 가입자 규모는 케이블과 위성을 합쳐 약 900만 가구로 추산된다. 한달 위성 방송 요금이 대략 150헤알 정도(원화 약 10만원)이므로, 가구수를 곱하면 무려 월 9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엄청난 시장이다.
이처럼 황금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다수의 위성·케이블 방송 사업자들은 주도권 쟁탈전에 안간힘이다. 허가받은 업체들 가운데는 얼마전 디렉TV를 인수한 ‘스카이’사와 TV·전화·이동통신 사업을 모두 거느리고 있는 엠브라텔(Embratel), 텔레포니카가 3파전을 이루고 있다. 이 가운데 스카이사가 위성 TV시장에서는 8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 전국 각지의 케이블 인프라가 취약한 탓에 대도시에는 케이블 방송 가입자가 많은 반면, 지방으로 갈수록 위성방송 가입자 규모가 압도적이다. 넓은 국토의 브라질 유료 방송 시장에서는 위성 방송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이들 3개 업체를 위협하고 있는 존재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사제 위성 TV 수신 장치다.
위성 방송에 가입하면 방송사는 위성 안테나와 셋톱박스를 설치해주고, TV를 연결해 시청이 가능하도록 한다. 하지만 월 요금이 매우 비싼 브라질의 경우 유료 방송을 보고 싶은 서민들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이 편법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사제 위성 TV 수신 장치인 것이다. 허가받은 방송사의 수신 장치와 사제 장치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방송 프로그램의 선택 폭이나 화질을 고려하면 얼마전까지만 해도 거의 차이가 없었다. 합법적인 셋톱박스의 경우 스위스 ‘나그라비전’과 독일 ‘비디오가드’의 보안 시스템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그라비전의 보안시스템인 ‘나그라II’는 7자리 숫자의 코드가 바뀌면서 시스템을 보호해주는 알고리듬에 의해 작동된다. 숫자의 패턴이 매 30분마다 변화를 주는 식이다. 그런데 사제 위성 TV 수신 장치를 만들려는 헤커들의 노력은 이 보안시스템의 숫자 패턴을 추적해서 풀어낸뒤 인터넷을 통해 패치를 보급했다. 사제 위성 시스템을 사용하는 회사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패치를 내려받아 자사의 불법 셋톱박스에 적용시켜 위성 TV방송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자신들이 만든 사제 셋톱박스를 사야 하지만, 시청료를 내지 않고도 유료 위성 TV를 시청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제 셋톱박스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한 동안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사제 셋톱박스를 수입, 판매하는 이들은 막대한 불법 이득을 얻게 됐다. 지금까지 큰 문제가 없었던 이유는 브라질 법이 사제 셋톱박스의 사용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브라질 현지 법원은 사제 셋톱박스의 판매는 불법이지만, 소비자들은 편익을 얻는 만큼 이를 사용한 개인에게는 문제삼지 않았다. 따라서 업자들은 사제 셋톱박스의 수입과 판매가 자유로운 이웃 나라 파라과이를 통해 들여온 다음 이를 브라질 시장에서 되파는 식의 영업을 해왔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일부 불법적인 행위가 벌어지지만, 브라질 현지에서 유통되는 모든 셋톱박스를 추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여기에다 스카이사를 제외한 텔레포니카와 엠브라텔은 전화와 이동통신 사업도 영위하기 때문에 위성 TV에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것도 사제 수신장치의 유통을 관망할 수 밖에 없었던 한 이유다.
하지만 스카이사는 사정이 달랐다. 스카이는 경쟁사들의 보안 시스템을 관리하는 회사들을 상대로 대규모 소송을 걸었고, 그 결과 관련 보안 업체에서는 새로운 시스템을 브라질 위성 TV 시장에 적용하기로 했다. 과거 7자리 숫자의 변환에 의한 알고리듬을 최고 21개 숫자의 변화에, 3개의 알고리듬을 적용하는 보안 시스템으로 알려졌다. ‘나그라 III’로 알려진 이 보안 시스템의 또 다른 특징은 매 21자리 숫자의 패턴이 컴퓨터에 의해 다시 매 2초마다 한번씩 맞춰주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더 이상 사제 셋톱박스가 기승을 부리기 어려워진 것이다. 특히 설사 그 패턴을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인터넷에 유포하기는 어렵다. 급속도로 사제 셋톱박스의 그림자가 사라지게 된 배경이다.
일단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갖게 된 허가받은 방송사들은 지금까지 유통된 사제 셋톱박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들은 손해를 봤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투자했다고 여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분명하다.
그동안 사제 셋톱박스의 혜택을 봤던 시청자들은 언제부턴가 자신의 TV에서 이전까지 볼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게 되자 허가받은 방송사에 정식 가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필자가 만나본 레오나르도씨(35, 브라질 포즈 두 이과수 거주)도 이번에 새로 스카이사에 회선을 신청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의 7살난 딸이 TV시청을 즐기는데, 현재 보유중인 셋톱박스로는 이전 프로그램을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셋톱박스 판매상인 델 에스떼의 상인 K씨(50, 델 에스테시 거주)도 더 이상 사제 셋톱박스가 팔리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결국은 허가 받은 방송사들을 도와준 셈이 됐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유료 방송에 가입하고 있을까?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이전에 케이블TV를 신청할 경우 불과 하루나 이틀새 셋톱박스를 설치해주던 것이 지금은 길게는 두 달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수신장치의 공급이 달리기 때문이다. 수요는 엄청날 것으로 짐작되는 현상이다.
현재로선 허가받은 유료 방송사들의 승리로 끝난 위성 TV시장. 하지만 해커들과 이득을 추구하는 집단의 노력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브라질의 위성 TV 시장이 관심을 끄는 이유다.
상파울루(브라질)=박소현 세계와브라질 블로거 infoiguass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