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에서 체포돼 러시아로 돌아간 간첩 안나 채프먼에 쏠린 뭇 남성의 시선이 엉큼하다. ‘여성 스파이’라는 수식 한 구절과 얼굴 사진 한 장만으로도 머릿속에 온갖 그림(?)을 그리기에 충분했는데, 채프먼의 낯 뜨거운 누드 사진까지 등장해 인터넷을 떠돌았다. 채프먼의 남편이 누드 사진을 돈과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채프먼을 향한 뭇 남성의 음흉한 눈길과 욕구를 채워줘 자기 지갑을 불리려는 이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채프먼을 닮은 자위용 인형을 인터넷에 내놓는가 하면, 포르노 영화까지 앞서 만들 태세다.
지난 19일 스티븐 허쉬 비비드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안나는 지난 몇 년간 우리가 본 가장 섹시한 스파이”라며 그에게 성인 영화 출연을 제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비비드엔터테인먼트 최고 감독인 B. 스코우를 모스크바로 보내 안나와 함께 일하게 하고 싶다”며 채프먼을 카메라 앞에 세워 수익을 내고픈 욕심을 드러냈다.
채프먼도 자기 이야기를 출판하거나 영화를 만드는 대가로 돈을 벌 생각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람들, 도대체 무엇을 사고팔겠다는 것인가. 사고팔겠다니 ‘상품’이 있다는 얘기인데, 그게 너무 낯 뜨거워 도무지 뭐라 말하기에 힘겹다.
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상품의 본질은 재생산이 가능한지에 달려있다’고 했다. 다 팔렸을 때 같은 것을 다시 만들 수 없다면 ‘상품’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폴라니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노동을 상품으로 파는 게 잘못’이라고 풀어냈다. 본질적 ‘상품’을 만들거나 파는 게 아니라 ‘하루 8시간이나 10시간’을 제공하고 급료를 받는 구조가 사회 구조를 왜곡하고, 인간성을 파괴하는 요소가 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임금’이란 자신의 인생을 잘라 팔아서 얻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인간은 단 한 번의 시간과 인생을 보내는 데, 그 한 번밖에 없는 순간(노동)을 매매한다는 것은 비인도적이라는 게 폴라니의 시각이다. 그는 또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본래 교역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에 가격을 붙이고 거래를 하게 됐는데, 그것이 ‘악마의 맷돌’이 됐다”고 주장했다.
세상에는 분명 사고팔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