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망 중립성 개념을 세우자] <3>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게 듣는다

망 중립성 이슈에 대해 포털 등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은 통신사업자와 다르다. 통신사업자가 원하는 별도의 망 사용료 부담은 근거가 부족하고 인위적인 서비스 제한은 인터넷 서비스 혁신의 발목을 잡는다는 주장이다.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은 망 중립성을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서비스나 콘텐츠, 플랫폼 및 단말기 등 모든 망에 대한 이용을 차별 없이 평등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원칙’이라고 풀이한다. 특히 무선 인터넷의 망 중립성은 ‘망 개방’이라고 부른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망 사업자 간의 수평적 연결은 물론이고 망 사업자와 단말기, 콘텐츠, 애플리케이션 사업자 간의 수직적 연결을 자유로이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인터넷은 설계 이념 자체가 망 중립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난 2007년 미국 국회에서 인터넷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빈턴 서프 현 구글 부사장은 “인터넷이 새로운 서비스와 콘텐츠에 대한 접근 제약이 없도록 고안됐다”고 증언했다.

◇추가 비용 지급은 불합리하다=인터넷 서비스 업체가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한다는 통신업체의 입장은 ‘무임승차론’에 근거한다. 이는 지난 5월 열린 망 중립성 포럼에서 공성환 KT 상무가 “포털이나 콘텐츠 사업자가 네트워크 사업자의 망을 이용해 수익을 내면서 망 관리 대가 없이 무임승차하는 것은 규제해야 한다”고 한 말로 정리된다.

반면에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은 이미 시장 원리에 맞게 망 사용료를 내고 있다고 반박한다. 최성진 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은 “네이버나 다음 등 국내 주요 포털은 네트워크 사업자의 인터넷데이터센터에 서버를 두고 사용료나 전기료 외에 별도의 트래픽 비용을 망 사용대가로 지불하고 있다”며 “특히 우리나라는 외국과 비교해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가 지불하는 트래픽 용량 당 비용이 높은 국가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트래픽당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에게 비용을 부과하는 국내 실정과 달리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IX(Internet eXchange)라는 데이터 교환센터가 활성화돼 있다.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는 IX 이용료만 부분적으로 내고, 대개 트래픽 비용은 별도로 내지 않는다.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은 구글 등 일부 해외 업체들이 한국에 서버를 두지 않고 속도가 다소 느려지더라도 일본이나 대만 등 다른 아시아 국가나 미국의 서버를 이용하는 것도 이 같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외국과 달리 트래픽 비용까지 내야 하는 한국의 상황은 무임승차론과 거리가 멀다는 게 인터넷 서비스업체들의 중론이다.

망 사용료는 이용자들도 부담하고 있다. 황희수 NHN 실장은 “포털이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것은 이용자들이 선택했기 때문”이라며 “이용자들과 포털 사이의 망 사용에 대한 대가는 이용자들이 월 정액제로 지불하고 있다”고 말했다. 망 구축에 소요되는 비용을 이용자들이 분담하는 구조라는 말이다. 결국 비용을 내는 이용자는 원하는 인터넷 서비스를 능동적으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논리다.

◇비용 차별은 인터넷의 빈부 격차를 만든다=망 중립성은 결국 망 사용료 문제로 직결된다. 통신 사업자가 원하는 ‘더 많은 트래픽은 더 많은 비용 부담을’이라는 명제는 일면 합리적이지만 망 중립성의 근본정신을 훼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터넷의 계층이 나뉘면 추가비용을 지불하는 업체용 프리미엄급 ‘부자망’과 추가비용을 지불하지 못하는 저속의 ‘빈자망’으로 인터넷 세상이 양분될 수 있다는 우려다. 중소 업체는 트래픽을 많이 사용할 수 있는 프리미엄 망 사용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서비스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는 중소기업의 시장 진입장벽이다.

불공정 경쟁 환경도 걱정된다. 망 사업자가 의도적으로 경쟁업체 서비스를 배제하고, 이에 따라 소비자 선택권이 침해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방송통신 융합 과정에서 망 사업자는 콘텐츠 유통에 본격 뛰어들고 있으며 망 중립성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정부는 이른바 ‘IPTV법’이라고 불리는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을 만들면서, 제14조 전기통신설비의 동등제공 조항에서 망 동등접근을 보장했다. 망 없는 사업자도 망을 갖춘 사업자와 동등하게 서비스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다.

◇망 사용료 부담은 인터넷의 걸림돌=세계 각국은 국경 없는 인터넷과 콘텐츠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은 1998년 ‘인터넷 과세금지법(the Internet Tax Freedom Act)’을 제정한 후 세 차례 적용 시한을 연장, 현재 2014년까지 인터넷 기업의 세금을 면제하고 있다. 유럽 각국은 콘텐츠 산업 육성의 발판 마련을 위해 망 사용료를 낮추는 데 주력하는 추세다.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망 사용료 부담이 높은 국내에서 망 사용료를 인상할 경우, 글로벌 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망 사용료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도 있다. 망 사업자들이 트래픽을 차별적으로 취급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망 사용료 부담을 늘리면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은 서비스 품질과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이용자들에게 그 비용의 일부를 받아야 한다. 현재 포털 사업자들은 메일이나 검색, 뉴스 등 다양한 정보 및 편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용자로부터 사용 대가를 받지 않는다.

‘롱테일 마케팅’의 저자이자 ‘와이어드’ 편집장인 크리스 앤더슨은 디지털 경제에서 한계 비용이 거의 ‘0’인 정보나 서비스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썼다.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 망 사용료를 지불하라는 요구는 이러한 디지털 경제의 흐름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미국의 망중립성 6대 원칙>

①콘텐츠 전송: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는 모든 이용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선택한 합법적인 콘텐츠를 전송하거나 전송받는 것을 막을 수 없다.

②애플리케이션 및 서비스 이용: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는 모든 이용자들이 선택한 합법적인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거나 합법적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③기기부착 및 이용: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는 모든 이용자들이 네트워크에 해를 가하지 않는 한 합법적인 기기(디바이스)에 연결하거나 네트워크를 통해 이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④경쟁의 혜택: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는 모든 이용자들이 네트워크사업자, 애플리케이션 사업자, 서비스사업자 그리고 콘텐츠 사업자 간의 경쟁으로 부여된 혜택을 제한할 수 없다.

⑤비차별성: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는 합법적인 콘텐츠,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비차별적인 방식으로 제공하여야 한다.

⑥투명성: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는 합리적인 네트워크 관리와 이용자, 콘텐츠,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사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다른 행위들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