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웹스터 사전에 `프레너미(frenemy)`라는 신조어가 등록됐다. 친구(friend)와 적(enemy)이라는 뜻의 두 단어를 결합한 이 신조어는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기업 간의 경쟁과 협업을 논할 때에도 쓰인다.
어제까지 경쟁적 관계를 구축해 오던 기업들이 갑자기 두 손을 맞잡는 일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IBM과 경쟁사인 동시에 협력사이고, 구글과 애플 역시 프레너미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다. 기업 간의 관계를 적 아니면 친구라는 흑백 논리로 재단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시장경제 시스템에 대해 고전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같은 움직임에 파격과 혼란을 느낄만하다. 고전적 관점에서 기업 간의 관계란 일정 규모의 파이를 놓고 경쟁하거나, 혹은 협업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화제가 됐던 `나이키의 경쟁 상대는 닌텐도다`라는 경영 서적을 떠올려 보자. 이 책은 나이키 매출 감소의 원인이 아디다스의 신제품 출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닌텐도 게임을 하러 실내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모두 시장경쟁 및 기업 관계에 대한 고전적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 전환은 기존에 고정적이라고 생각했던 시장 파이가 실은 유동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서 출발한다. 나이키의 고객은 스포츠 애호가가 아니라 실은 여가 생활을 보내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고, 따라서 그는 닌텐도가 아닌 여행 상품을 선택할 수도 있다.
더 이상 상품과 소비자, 혹은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를 일대일로 재단하기는 어려운 시대다. 소비자는 매우 복잡한 동기를 가지고 소비 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무한에 가까운 상품과 서비스가 복합적으로 출시되고 있다. 필요를 넘어서 감정적 만족, 과시, 욕망 실현 등 다양한 이유로 지갑을 여는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서라면 업종의 구분이 무색하게 마련이다.
이에 따라 경쟁자와 협업자에 관한 구분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적군과 아군의 개념이 무너진 시장, 업종의 구분조차 없이 혼재된 시장. 이를 마주하는 경영자가 떠올릴만한 키워드가 바로 `프레너미`다.
앞으로 시장에서는 이종 간에 타깃이 교집합을 이루거나, 경쟁업체 간에 전혀 다른 타깃을 겨냥하는 일이 빈번히 나타날 것이다. 타 업종에서까지 자사의 고객을 타깃팅하고 있다고 위기라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이는 또 다른 기회다. 가령 기업 경영 진일보에 대한 의지를 가진 나이키의 경영진이라면 닌텐도를 경쟁 상대로 선포하는 동시에, 소니와 협력을 추진하지 않겠는가.
최근 이 같은 `지혜로운 악수`를 곳곳에서 목격하게 된다. 내가 몸담고 있는 교육업계는 특히 발걸음이 바쁜 듯 하다. 가장 대립된다고 여겨졌던 학습과 놀이의 영역이 만나 `g러닝`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든 것이 좋은 사례다. 교육용 게임, 기능성 게임의 미래에 대해 여러가지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많은 플레이어들이 이 블루오션의 개척에 뛰어들고 있다.
우리 회사 역시 외국어 교육에 전환점을 가져올만한 최근의 환경변화에 촉각을 기울이는 한편, 다양한 업계와의 교류를 통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비즈니스 성과 자체에 대해 기대가 드는 것은 물론, 새 영역을 접하고 신 비즈니스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경영자로서의 설렘도 밀려온다. 적과의 행복한 동침, 프레너미는 기업 경영에 새로운 국면을 열어주는 키워드임이 분명하다.
박경실 파고다교육그룹 회장 kspark@pagod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