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인간서버

휴가철이다. 실험을 한번 해봤다. 3박4일간 가족여행을 떠나면서 휴대폰을 켜둔 채 집에 두고 갔다. 여행기간 내내 뭔가 허전하고, 불안했다. 가끔 나도 모르게 급하게 주머니 속을 뒤지다 멈추곤 했다. 여행 마지막 날 집으로 향하면서 궁금증은 극에 달했다.

`부재 중 전화 54통, 문자 메시지 72통.` 시간으로 따지면 70여시간, 딱 3일간의 기록이었다. 이 가운데는 연결이 안돼 두 번, 세 번 다시 연락 한 경우도 있었다. 휴가라고 직장과 출입처에 떠벌리고 갔지만, 하루 평균 15통 이상의 전화와 20통가량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좀 많았다. 하지만 웬만한 직장인들도 실험을 하면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좀 암울한 이야기지만, 휴대폰은 어느 새 직장인을 `인간서버`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서버(server)의 사전적 의미는 주된 정보의 제공이나 작업을 수행하는 컴퓨터 시스템이다. 클라이언트 시스템이 요청한 작업에 항상 응답해야 한다. 언제나 켜진(on) 상태여야 한다. 요즘 휴대폰은 자동 로밍 기능으로 해외에서도 바로 터진다.

요즘 한창 뜨는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오피스를 구축한 대기업 한 임원의 증언은 `인간서버`의 단면을 보여준다. “혹시 중요한 이메일을 놓칠까봐, TV를 보면서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실 인간서버는 1986년 삐삐가 국내 처음 보급되면서 시작됐다. 삐삐를 잃어버린 직장인이 울고 있으니, 산신령님이 찾아주며 “너, X 됐다. 너희 부장이 부재 중 삐삐 10통 쳤다”고 말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하기도 했다. 기술의 발달로 시티폰(1997), PCS(1997), 메신저(1998) 등으로 통신 수단은 발달했다. 직장인들은 그때마다 업무가 편해지고, 생산성도 높아졌다. 하지만 노동환경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 시대엔 피서지인 해수욕장에서도 24시간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된다.

인간은 하루 7시간은 자야 한다. 기술과 생리 현상이 충돌한다. 과연 결말은 어떻게 될까. `CEO의 마이드` 저자인 제프리 가튼 예일대 교수의 해답이 명쾌하다. “지금은 우리가 적응하거나 도태되는 시기가 아니다. 기술이 적응하거나 도태되는 시기일 뿐이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