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융합의 시대, 실험실 칸막이를 허물다

[ET단상] 융합의 시대, 실험실 칸막이를 허물다

“지식 정보화사회가 진전될수록 칸막이식 영역 구분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이를 앞서 실행하는 국가와 기업이 주도권을 잡을 것이며, 국가 간 관계는 물론이고 정부와 기업, 교육시스템도 여기에 맞게 바꿔야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무심코 지나쳤던 앨빈 토플러의 이 말이 아이폰의 등장으로 본격화된 스마트폰 전쟁을 보면서 이제는 현실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스마트폰을 매개로 한 변화는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왔다. 기술 간의 융합과 집적도를 극대화시킨 스마트폰의 진화는 실험실에 몸담고 있는 과학자들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내 지식이나 내 기술 개발에만 몰두해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한우물만 파면 되었던 기술 개발의 시대는 가고, 자신의 기술을 다양한 분야와 융합하고, 변형시킴으로써 그 활용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오늘날 전 지구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녹색기술 또 기존의 IT, BT, NT와 녹색기술이 융합돼 신기술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 최근의 트렌드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시작한 `기반형 융합녹색연구사업`이 반가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이제까지 대학과 출연연구소를 가로막고 있던 칸막이를 허물고 새로운 녹색기술 개발에 필요한 기반기술을 공유하고, 연구개발에 매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출연연은 이제까지 대학의 기초연구와 산업계 상용화 연구의 중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지만, 대학과의 교류가 어느 정도는 제한적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번 사업에서는 출연연 한 곳을 중심으로 서너 대학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서로 연구 인력을 파견하고 실험실을 개방해 연구장비를 공동으로 활용하는 등 실질적인 협력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이 같은 출연연과 대학 간의 공동연구는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되며, 동시에 우수한 전문인력 양성이라는 성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은 대학에서의 연구가 강한 반면에 독일은 연구소가 대부분의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행하게도 미국과 독일의 강점을 모두 갖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세계적인 대학과 훌륭한 연구소가 공존해 기초과학연구에서부터 원천기술연구까지를 다 할 수 있는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 할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출연연과 대학이 함께 개발하는 녹색 기반기술은 앞으로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나 환경감시, 신재생 에너지 등 관련 사업에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여기에서 얻어진 원천기술이 사업화를 통해 세계 시장에 진출할 경우, 전 세계 녹색기술 시장을 선점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견인해낼 것이란 기대가 크다.

10년 후 녹색산업, 기술 시장 규모는 약 3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장기 신성장 동력에 목말라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과거 우리의 반도체 산업이 그러했듯 관련 신기술 개발과 R&D 투자 등을 통해 새로운 시장에 한발 앞서 대응한다면, 대한민국의 국가경제 순위를 획기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실험실 간의 칸막이를 허물고 난제를 함께 풀어가는 교류와 협력을 통해 개발한 녹색기반 기술이 녹색강국, 대한민국의 새로운 힘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홍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hahn@ki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