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중·대만 ECFA를 넘어서는 지혜

[ET단상] 중·대만 ECFA를 넘어서는 지혜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1584~1645)는 열세 살에 첫 승부를 겨룬 이후 60여회의 대결에서 단 한 차례도 진 적이 없다고 한다. 그의 승리요인은 단 한 가지. 적과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전략을 바꾼 것이었다.

지난 6월 중국과 대만 간에 경제기본협정(ECFA)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이 향후 우리나라 수출산업, 특히 부품소재산업의 대중국 수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부품소재산업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10개월 연속 50억달러 이상의 흑자를 기록하며 국가 핵심 산업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 배경에는 중국 시장 진출의 확대가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때 중국-대만을 잇는 중화경제권의 등장은 확실히 위기의식을 가질 만한 사안이다. 더구나 이번 협정 중 `조기수확프로그램(EHP:Early Harvest Program)`이 실시되면 대만의 경우 539개 품목, 중국의 경우 267개 품목에 대해 2년간 3단계에 걸쳐 무관세가 적용돼 우리나라 제품이 대만산에 밀려 중국 수출에 차질이 빚어질 우려마저 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대와 맞서 이기려면 비상한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상황을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무사시는 이를 `관(觀)`과 `견(見)`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관은 상대의 생각을 간파하는 마음의 눈, 견은 현상적인 움직임을 보는 눈이다. 중-대만 간 ECFA 체결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첫째, 단기적으로 중국의 산업발전 추이를 살펴 수요증가가 예측되는 품목에 대한 공급역량을 확충하는 등 개별 품목별 현황파악과 시장 전망을 체계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협정에서 포괄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상품무역, 서비스무역 내용 등에 대해 전반적인 영향 예측과 대응전략이 수립돼야 한다. 이러한 예측과 전략을 바탕으로 한 · 중 FTA의 적극적인 추진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중국 내수시장 진출의 포트폴리오 재편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대중 부품소재 수출의 75%가 중국 현지에 진출한 우리 수요기업 또는 중국내 외자기업에 집중돼 있다. 이러한 편향적인 시장진출 구조는 향후 급변하는 중국 내수시장에 대해 비탄력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존 거래선을 유지하면서 중국 기업과의 네트워크 확대를 통한 유통망 편입에 주력하고 이를 위한 관련 금융지원을 추진하는 등 중국 내수시장 진출 확대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대만과 전략적 협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중국 시장의 전략적 진출을 위해 대만 부품소재기업과의 M&A 등도 생각해 볼만하다. `중국 바라보기`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정치 · 문화적 동질감을 가지고 있는 대만이라는 매개국가를 통한 우회 진출도 우리 수출경제의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국내 부품소재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부품소재 자체의 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기술인력 양성과 고급 브랜드 육성, 중소기업의 역량 강화 등도 필요하다.

무사시는 `한 명의 적을 이길 수 있으면 천 명도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부품소재산업의 궁극적 목표가 글로벌화에 있는 이상, 수많은 국가를 상대로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고, 경쟁에서 이겨냄으로써 경쟁국 자체를 시장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이 지금 눈앞의 상대가 하나의 중국이든 두 개의 중국이든 우리가 반드시 넘어서야 하는 이유다.

허규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부품소재단장 herbq@kia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