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코모-KDDI, 모바일TV 기술 다툼 `점입가경`

일본 제1, 제2 이동통신사업자인 NTT도코모와 KDDI가 벌이는 모바일TV 기술 주도권 다툼이 점입가경이다. 특히 시장 이해관계에 따라 기술 선진국인 일본이 섬 안에 갇힌다는 `갈라파고스 신드롬`이 재연될 것이라는 주장이 고개를 든 가운데 정부 당국이 소비자 편익에 이바지할 기술 하나만 선택할 것으로 보여 흥미를 더했다.

17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은 도코모와 KDDI 간 모바일TV 기술 주도권 싸움이 치열한 나머지 일본 정부 규제당국을 딜레마에 빠뜨릴 정도라고 전했다.

이달 초 일본 정부 규제당국이 2012년부터 적용할 모바일TV 기술 표준을 1개만 선택하겠다고 못을 박으면서 도코모와 KDDI 간 혈투가 시작된 것. 일본 정부는 도코모와 KDDI가 지지하는 게 모두 기술적 표준을 만족한다고 보고 `어느 기술이 (방송통신) 콘텐츠 제공에 더 적합하고, 관련 사업계획이 알찬지에 주목하겠다`고 밝혀 두 회사 간 다툼에 기름을 부었다.

일본 제2 이동통신사업자인 KDDI는 미국 퀄컴의 모바일 방송 기술인 `미디어플로(MediaFlo)`를 바랐다. NTT도코모는 `ISDB-Tmm`으로 불리는 일본의 디지털TV 표준을 지지했다.

퀄컴은 당연히 KDDI 편에 섰다. 자사 `미디어플로`가 굵직한 휴대폰 시장 가운데 하나인 일본에 상륙하면, 이제 막 태동하는 세계 모바일TV 기술 시장을 선점할 도약대가 될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일본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일본의 기술 고립현상(갈라파고스 신드롬)을 부르거나 미국에 좋은 일(퀄컴 미디어플로의 세계화)이 될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네빌 마이저 퀄컴 수석부사장은 “`미디어플로`가 세계에서 가장 폭넓게 (모바일TV 기술로) 채택되기를 갈망한다”며 “일본이 매우 중요한 시장이되 아시아, 남미, 유럽 등지를 함께 지향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일본 휴대폰 시장은 외길을 걸었다. 휴대폰 간 디지털 상거래, 무선 정보 교류 체계 등에서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섰으되 국내에 머물렀다. `일본 이용자끼리`에 그쳤던 것. 이동통신사업자와 휴대폰 제조업체가 오직 자국 소비자의 지갑을 열 수 있는 상품에 매달렸다. 이 같은 구조가 일본 이동통신서비스 시장을 섬(갈라파고스)으로 만들었으되 이용자(소비자)에 유용한 환경을 조성했다.

KDDI는 이러한 약점을 간파, “`플로(FLO) TV` 등으로 미국에서 모바일TV 통신망(네트워크) 파워를 확립한 `미디어플로`를 표준으로 선택하는 게 일본에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AT&T와 버라이즌와이어리스의 이동통신망을 통해 ABC, CNN, 폭스, MTV 등 유명 방송사업자의 TV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플로TV`가 일본이 나아갈 길이라는 것이다. 퀄컴도 “`미디어플로`에 적합한 휴대폰을 개발함으로써 일본 휴대폰 제조업계가 해외에서 더 많은 사업기회를 얻을 수 있다”며 KDDI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플로TV`는 강점과 약점을 모두 내포한 기술로 읽혔다. 미국 내 서비스가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성공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폴 케이콥스 퀄컴 최고경영자(CEO)도 지난달 21일 직접 플로TV 이용 실적이 “실망스럽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NTT도코모는 이러한 현실에 기대 “KDDI가 `플로TV`의 단점을 설명하지 않아 무책임하다”고 비꼬았다. 또 `플로TV` 사업이 주파수 확보 문제와 같은 서비스 구역 측면에서 여전히 더 해결해야 할 게 많다고 강조했다.

특히 류지 야마다 도코모 CEO는 “모바일TV 서비스에 438억엔(5억1300만달러)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KDDI의 과도한 (모바일TV) 투자 규모(961억엔)가 콘텐츠 가격 등으로 전이돼 이용자에게 부담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KDDI 투자 계획이 도코모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은 이용자 밀집 지역(도심)을 포함한 모바일TV용 기지국 수를 865개나 세울 계획이기 때문이다. 도코모는 125개만 세울 예정이다. KDDI는 이를 근거로 삼아 “도코모는 적은 기지국 수 때문에 서비스 구역(커버리지) 문제에 봉착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도코모는 “기지국 수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일축하는 등 두 회사 간 견제가 점점 뜨거워지는 형국이다.

시장 반응은 차가웠다. 얼마나 많은 일본 소비자가 모바일TV에 돈을 낼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월 정액 3세대 이동통신 요금제를 이용해 인터넷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데다 지상파TV 채널도 휴대폰을 통해 `무료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카이도쿄서치의 시장분석가 유수케 추노다씨도 “모바일TV가 (도코모나 KDDI의 차세대) 주력 매출 원천이 될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