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계가 기(氣)를 못펴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마치 더위먹은 모양새다.
과학기술계의 눈과 귀를 모았던 국가R&D 거버넌스와 정부출연연구기관 개편, 과학기술인 사기진작책 등은 말만 무성했지, 얻은 성과는 별반 없어 보인다.
지난주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이 깔아놓은 자리에서도 정부 주도의 국가 R&D거버넌스에 대해 날카롭고, 명쾌한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거버넌스에 관해 여론 수렴을 통해 최종안을 만들겠다고 말하고만 있을 뿐 `똑 떨어진` 답을 내놓지 않고 있는 정부 측이나 변변한 주장하나 `똑소리 나게` 못내놓는 과학기술인들이나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눈치보기도 있을 수 있다. 출연연 일각에서는 여전히 기관장 사정설이 돌아다닌다. 정부가 추진중인 거버넌스를 반대하는 기관을 어떻게 한다느니 하는 말들이다.
과학기술계가 현재 나온 발전방안 가운데 그래도 가장 괜찮다고 보고 있는 출연연 발전민간위원회의 보고서는 이미 누더기가 됐다. `힘 센` 부처입장 등을 반영하다보니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최근엔 출연연 명칭 변경을 놓고 오락가락 했다. 결국은 없었던 일로 했지만, 사실 ETRI의 브랜드 가치만 따져도 자그마치 1조원에 육박한다는 보고서가 나와 있다.
국가R&D 거버넌스와 출연연 개편, 과학기술인 사기진작책 등을 나눠 추진한다는 말도 돌고 있다. 과학기술인들의 반대가 대체로 많은 출연연 개편은 일단 시기를 조절하고, 나머지 일부터 되는 쪽으로 밀어보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동안 과학기술계 이슈를 주도하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법안 추진과 위치 선정의 경우는 `모두가 피서갔다`고들 말하고 있다. 관심있는 과학기술인 일부만이 예의 주시하고 있을 뿐, 전체적인 주장과 논리는 잡히는 게 없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과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기관장 공모도 지지부진이다. 산업기술연구회 관할이지만 연구회는 손을 놓고 있다. 연구회 기관장 거취 결정을 앞두고 있다는 설도 나오고, 일부에서는 언제 이사회를 열지 예측도 어렵다는 얘기도 나왔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는 아예 이사회를 열어 진행되던 기관장 공모를 취소했다. 우선은 현 기관장이 연임형태로 업무를 이어가기로 한 것. 공모를 진행했지만 6개월 뒤 총장 체제로 간다는 것이 주된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그렇다면 애초에 공모를 말았어야 했다. 공모과정에 드는 비용이 모두 국민 세금이라는 걸 망각한 결과다.
대덕연구개발특구본부 이사장 공모는 벌써부터 내정설로 시끄럽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 사무처장 출신이 맡게 돼 있다고 하고, 당사자는 이미 사표까지 냈다는 설도 있다. 정부의 인사 원칙이 안보인다.
어디부터 꼬였는지 과학기술계는 점점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해 가고 있다. 대책도, 이를 해결할 마땅한 인물도 현재로는 안보인다.
믿을 것이라고는 출연연, 나아가 과학기술계 자신밖에 없다. 특히 출연연은 자신의 몫과 역할을 누가 정해줘서 하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지혜를 발휘할 때가 됐다. 그것만이 희망처럼 보인다.
박희범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