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가 붉은 여왕의 손을 잡고 숲속에서 뛰고 있다. 그렇지만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저는 이렇게 뛰고 있는 데 왜 제자리에 있는 건가요?” 앨리스가 묻자 붉은 여왕이 대답한다. “제자리라도 지키려면 온힘으로 달려야 하고, 더 앞으로 나가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뛰어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앨리스처럼 뛰고 있다.
영국 동화작가 루이스 캐럴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후 6년만인 1871년에 발표한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매우 독특한 소재의 이 환상적인 동화는 연극과 영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매체로 만들어졌고 아마도 독자의 대부분은 접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약육강식의 생태계에서 약자인 영양은 강자인 치타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는 학습과 노력을 통해 빠르게 달리게 됐다. 그렇지만 치타도 영양을 잡아먹고 생존하기 위해 보다 빨리 달릴 수 있도록 경쟁적 진화를 거듭 해 왔기 때문에 영양의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이처럼 `붉은 여왕 효과`는 다양한 사회적, 과학적 경쟁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기반이 취약했던 60~70년대에 집중적으로 과학기술 관련 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때 해외에서 유학생으로서 공부하다가 연구소에 취업했던 연구자가 과거 국내에서 자신을 가르쳤던 지도교수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받았던 것은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얘기다. 당시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시급했기 때문에 주로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한, 이른바 `추격형 기술`을 들여오거나 개발하는 것이 과학기술의 주된 역할이었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경제는 성장하고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 이르면서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고도의 압축성장을 통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선진국에 진입할 것처럼 보였다.
이제 2010년, 한국인의 평균 근로시간은 2256시간으로 OECD 평균인 1764시간을 훨씬 앞지르는 것을 넘어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근로시간을 투자하고 있지만 경제는 제동이 걸리고 있다. 심지어 우리를 앞지르는 국가들이 나타나고 있다.
요즘의 우리나라는 마치 붉은 여왕의 숲속을 달리고 있는 앨리스와 같다. 그리고 그 숲속은 21세기의 경쟁이 훨씬 더 치열하게 폭주하는 세상으로 변했다. 어떻게 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앨리스는 붉은 여왕을 뒤로 하고 숲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해답은 원천기술이다. 모두가 비슷한 기술로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까지의 기술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거나 오히려 뒤로 물러서게 될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가적으로 원천기술의 개발을 적극적으로 장려해 연구자를 자극해 분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도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미래유망융합기술 파이오니어, 신기술융합형 성장동력, 산업원천기술개발 등 원천 및 융합기술 확보와 관련한 여러 사업들을 펼치고 있다.
더욱이 원천융합기술 확보 등에 필요한 예산을 2013년까지 6조원으로 늘릴 계획이라 하니, 멀지 않은 미래에 앨리스가 붉은 여왕보다 훨씬 빨리 달려 숲 밖으로 나가는 상상이 현실이 되고 우리 경제도 오랫동안 기다렸던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로 접어 들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준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원장 jtpark@kbs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