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정부·경제계 엔고 수렁에서 `허우적`

일본이 치솟는 엔화를 눈앞에서 보고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기축통화 중 하나인 엔화를 둘러싼 국제역학적 이유도 작동하고 있지만 외환시장 개입을 집행할 수 있는 일본 중앙은행의 내부 문제도 엔고 딜레마의 늪을 깊게 하고 있다.

엔화 상승을 막기 위해서는 시장에 엔화를 대거 공급해 통화가치를 떨어뜨려야 하는데 일본 중앙은행은 물가관리를 지상과제로 삼고 있어 통화 공급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을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엔화 강세 때문에 지난 7월 일본 수출은 5조9800억엔(710억달러)으로 5개월 연속 하락했다. 이는 전월 대비 1.4% 줄어든 수치다. 이 때문에 25일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 센고쿠 요시토 관방장관 등과 함께 총리관저에서 점심식사를 함께하며 1시간가량 엔고 저지 대책을 논의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온라인판을 통해 "노다 재무상은 간 총리에게서 어떠한 구체적 지시사항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전날 급등한 이후 장중 달러당 84.51엔까지 하락했던 엔화 가격은 재차 상승해 84.33엔까지 올라갔다.

일본이 이처럼 엔화 상승에 개입할 수 없는 이유에는 뿌리 깊은 옛 대장성(현 재무성) 관료들에 대한 중앙은행의 불신이 내부 걸림돌로 자리 잡고 있다. 이미 일본 정재계에서는 중앙은행이 시장에 공급하는 자금(0.1% 금리) 만기를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고 그 규모도 20조엔에서 30조엔으로 늘리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키를 쥐고 있는 중앙은행은 이 방안을 실행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엔화 강세 대책 논의를 위해 지난 23일 간 총리와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 총재가 전화 회담을 했지만 아무런 대책도 나오지 않았던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원인이었다"고 보도했다.

일본 중앙은행은 1985년 9월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 가치가 6배 치솟으면서 경제가 침체로 돌입한 것을 대장성 관료들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현재 일본 중앙은행은 관료들 개입을 막는 것이 지상과제처럼 돼 있다.

이는 일본 중앙은행의 최고의사결정기관인 금융정책결정회의의 면면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총재ㆍ부총재 2명과 6명의 심의위원 등 총 9명의 정책위원으로 구성돼 있는데 특이한 것은 정부 측 추천 인사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 금융통화위원회 구성원 7명 중 2명이 정부(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임명하는 데 반해 일본은 통화정책에서 정부 개입을 철저히 배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재 금융정책결정회의 구성원은 시라카와 총재, 야마구치 히로히데 부총재, 니시무라 기요히코 부총재를 비롯해 스다 미야코 전 가쿠슈인대 교수, 노다 다다오 전 쓰오부동산 회장, 나카무라 세이지 전 MOL페리 회장 등이 심의위원들이다. 일본 중앙은행 출신을 제외하면 교수나 재계 출신이 전부다. 관료집단 역시 적극적이지 못한 상태다. 집권 민주당과 간 나오토 내각이 다음달 치러질 당 대표 경선을 둘러싸고 정치적으로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와 경제산업성이 "달러당 85엔대 환율이 연말까지 지속될 경우 국내총생산(GDP)을 0.2%포인트 끌어내리는 영향을 줄 것"이라며 외환당국에 압박을 가하고 나서는 정도다. 이 때문에 효과적인 시장 개입이 이뤄질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한편 엔화는 실효환율을 기준으로 1995년 최고치 수준이 되려면 앞으로 30% 정도 추가 상승 여유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글로벌 시장에 만연해 있는 달러 약세 기조를 감안할 경우 외환보유액을 수조 엔 정도 풀더라도 효과가 크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도쿄 = 매일경제 채수환 특파원 / 서울 = 신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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