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글로벌 경기침체 이후 바뀐 산업계 새 판도(뉴노멀)를 선도하기 위해 합종 연횡하고 인수ㆍ합병(M&A)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은 사업 제휴는 물론 M&A에도 소극적이어서 글로벌 무대에서 점차 설 땅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달에만 수억~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대형 M&A들이 성사됐다. 인텔은 이달 들어 보안솔루션업체 맥아피를 약 77억달러에 인수했으며 텍사스인스트루먼츠의 케이블 모뎀 부문도 인수했다.
IBM은 마케팅 소프트웨어 전문 업체 유니카를 4억8000만달러에 인수했다. 샘 팔미사노 IBM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월 열린 연례 투자자 설명회에서 오는 2015년까지 200억달러를 투입해 적극적인 M&A에 나서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구글은 올해 7월까지 모바일 광고업체 애드몹을 7억5000만달러에 인수하는 등 15개 IT 중소기업을 무더기로 인수했다.
M&A 및 제휴가 사업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도 특징이다. 단순한 덩치 불리기가 아니라 경쟁력 강화와 사업다각화로 `구글과 애플`로 양분되고 있는 시장 구도를 깨기 위해서다. 인텔이 보안업체 맥아피를 인수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전통적인 반도체 하드웨어 기업인 인텔이 클라우드 서비스 등 소프트웨어(SW)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이들은 경기 회복으로 쌓은 현금으로 적극적인 M&A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CNN머니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시스코시스템스가 399억달러의 현금을 가지고 있는 것을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MS)가 368억달러, 구글이 301억달러, 애플이 243억달러, 오라클이 185억달러, 인텔이 178억달러, HP 가 147억달러, IBM이 122억달러를 보유해 8대 IT 대기업이 손에 쥔 현금만 모두 1913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글로벌 IT 기업들은 애초 추가 경기침체(더블딥)에 대한 우려 때문에 현금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으나 최근 들어 급변하는 산업 판도에 적극 대응하라는 주주와 투자자들 압력 등에 못이겨 M&A에 나서고 있다고 현지 애널리스트들은 전했다.
이같이 활발한 M&A에서 소외된 한국 기업들은 점차 활약할 무대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는 전 세계 10위권이지만 M&A 규모는 20위권 후반대일 정도로 M&A에 소극적인 것은 미래 시장을 선점하는 데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성표 삼성경제연구소(SERI) 수석연구원은 "글로벌 경기 침체가 해소되면서 글로벌 IT 기업들은 위기 이후 새롭게 바뀐 시장 판도를 장악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한국도 기업간 제휴나 M&A를 문어발식 확장으로 인식하지 말고 자신의 역량에 맞춰 빈 곳을 채우는 수단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혁준 KT 경제경영연구소 박사도 "글로벌 1, 2위 기업이 사업을 다각화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라 영향이 더 크다"며 "특히 SW 영역에서 글로벌시장 진입 장벽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매일경제 최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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