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DVD대여 사업자인 ‘블록버스터’가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28일자 LA타임즈는 블록버스터의 경영진이 최근 20세기 폭스,파라마운트,소니픽쳐스,워너브러더스,월트디즈니 스튜디오,유니버설 픽쳐스 등 6대 메이저 영화사 관계자들과 만나 9월 중순 파산 절차에 들어가는 문제를 협의했다고 보도했다. 이 자리에는 주요 채권자들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산 위기에 몰린 블록버스터는 현재 10억 달러의 부채를 지고 있는데, 채권자들과의 합의에 따라 9월 말까지는 이자 변제가 유예된 상태다. 블록버스터 주식은 이미 지난달 뉴욕 증시에서 상장 폐지된 상태이며, 지금은 장외에서 주당 11센트에 거래되고 있다. DVD대여 사업의 맹주였던 블록버스터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우선 블록버스터가 추진중인 기업회생 절차부터 살펴보자.
◇블록버스터의 회생 방안은?
블록버스터가 현재 검토 중인 파산 절차는 미연방 파산법 ‘챕터(Chapter) 11’ 조항에 의한 기업회생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 ‘챕터 11’조항은 우리나라로 치면 법정관리에 가깝다. ‘챕터 7’ 조항이 기업의 청산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면 ‘챕터 11’은 법정관리하에서 회생절차를 도모하는 것이다.
블록버스터 경영진이 6대 메이저 영화사 관계자들을 만난 이유는 9월 중순에 파산 신청을 하더라도 정상적으로 DVD 대여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다. 메이저 영화사들이 블록버스터의 DVD 대여사업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경우 DVD 대여사업은 결정타를 맞게 된다. 개봉 영화의 DVD대여 시점을 당기는 문제도 당장 급한 문제는 아니지만 메이저 영화사들의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다.
메이저 영화사들과의 관계 정상화에 이어 블록버스터는 높은 임대료를 내고도 수익이 별로 없는 매장의 대대적인 정리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LA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블록버스터는 현재 미 전역에 3425개의 매장을 운영 중인데,향후 500~800개의 매장을 정리할 계획이다. 작년에도 거의 1000개에 달하는 매장의 문을 닫았다. 대신 블록버스터는 ‘레드박스’ 처럼 키오스크에서 1달러에 DVD를 대여해주는 사업을 강화하고,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 서비스를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현재 블록버스터는 NCR로부터 키오스크를 납품받아 블록버스터 브랜드의 키오스크 매장을 미 전역에서 6000여개 정도 운영 중인데, 이를 더욱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블록버스터가 추진 중인 회생 계획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만일 블록버스터가 추진하고 있는 ‘챕터 11`에 의한 기업 회생이 불가능해지면 블록버스터는 새로운 투자자를 물색하거나 청산 절차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블록버스터의 위기 원인은?
블록버스터의 위기는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영화사의 DVD 매출이 급감하고 있는데서 알 수 있다. 애플의 `아이튠즈`에서 음악을 다운로드받으면서 음반사들이 위기를 맞은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더 이상 DVD를 대여점에서 빌려보거나 집에 소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 대여 시장도 온라인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넷플릭스` `게임플라이(Gamefly)` 등 업체는 영화 타이틀이나 게임 타이틀을 오래전부터 온라인으로 대여해주고 있다. 넷플릭스는 온라인으로 DVD를 주문받아 우편으로 대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인터넷 스트리밍 방식으로 영화나 TV드라마를 제공하는 사업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게임 플라이는 X박스,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Wii 등 게임 콘솔기의 DVD 게임 타이틀을 네티즌들로부터 온라인으로 주문받아 집까지 배달해준다. 굳이 블록버스터 매장에 가지 않더라도 영화나 게임 타이틀을 쉽게 대여받을 수 있다. 여기에 새로운 DVD대여 사업자인 ‘레드박스’는 1달러에 무인 키오스크 매장에서 DVD를 대여해주면서 블록버스터 시장을 급속도로 잠식해 들어갔다.
이처럼 시장과 소비자들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는데도 블록버스터는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20세기 플랫폼에 매몰되어 있었다. 물론 블록버스터도 온라인 및 키오스크 기반의 대여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배는 이미 가라앉기 시작했다.
블록버스터가 20세기의 플랫폼에서 여전히 허우적대고 있는 사이에 경쟁 사업자인 넷플릭스는 온라인 서비스를 PC,게임 콘솔, 네트워크 방식의 블루레이 디스크 플레이어 등으로 확장해 왔다. 최근에는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도 내놓았다. 아이폰에서도 일정액을 내면 넷플릭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통해 모바일 앱을 내려받아 영화를 볼수 있는 시대로 빠르게 옮아가고 있다. 블록버스터의 실패는 우리에게 세상이 얼마나 준엄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