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동안 제안서를 열 번 수정하고 미팅을 세 번이나 했다. 그렇게 공들여 국내 최초의 계약을 앞두고 갑자기 하지 말잖다. 기획서를 만들기 위해 관련 업체를 방문하고 도서관부터 박물관까지 싹 뒤졌다. 그렇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국내 최초로 실행할 일을 앞두고 그냥 보류하잖다. `헐~!` 창의성을 발휘하라고 말하면서 처음 하는 것은 다 겁을 낸다. `감이 안 좋다, 느낌이 안 온다. 왠지 불안하다`등의 모호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내 피와 땀을 증발시켜 버렸다. 허무하고 허허롭다
나이들면 몸은 늙어도 감(感)은 더 예민해진다.
세월이 갈수록 오감에 해당하는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은 떨어져도 생각은 깊어진다. 육감이 살아난다. 리더는 오감각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이 일에 온몸을 바친 우리보다 뒷선에서 팔짱끼고 생각하며 더 큰 그림을 본다. 여지껏 사귀어 온 세월이 아까워서 헤어지지 못하고 이태껏 노력한 게 아까워서 포기하지 못하는 우(愚)가 안 생기도록 제어하는 사람이다. 골똘하게 그것만 생각하고 있으면 오히려 실패하기 쉽다.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막연하게 마음을 열어둘 때 영감과 직감과 육감이 날개를 편다. 리더의 감과 직관을 믿자. 애쓴 과정을 전면 백지화하는 상사의 마음은 편할까. 상사가 취미삼아 우리에게 강아지 훈련 시키고 시간이 남아 돌아 뻘짓을 맡긴 것은 아닐 것이다. 상사는 말할 수 없는 어떤 기운을 감지했을 것이다. 그 직감과 육감을 믿자. 직관은 경륜과 몰입이 만들어 준 선물이다. 근거 없다고 따지지 말고 비과학적이라고 황당해 하지 말자. 단순함은 문제다. 하지만 복잡함을 충분히 치르고 난 후엔 근본적인 단순함이 필요하다. 그냥 감으로 밀어붙이면 큰일나지만 충분한 자료 조사와 분석 뒤엔 좀 더 단순하게 생각해야 한다. 근원적인 목적과 집중해야 할 핵심을 말이다. 상사는 지금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 중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