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은 중견기업 혹은 대기업이 진입하지 못하는 영역에 과감하게 도전하여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한다. 그 기술과 시장이 어느 정도 확대되면 이때 대기업이 진입하여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한다.
즉 벤처는 기업생태계 내에서 가장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산업 전반을 키우는 자양분이 된다. 10년 전 우리나라 벤처 붐이 풍부한 자양분이 되어 금융위기와 글로벌 경제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기업생태계의 자양분이라 할 수 있는 벤처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창조적 정신`=벤처는 말 그대로 모험기업이고 꿈을 먹는 기업이다. 그리고 그 이상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해답은 남들이 생각하지 않은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만드는 `창조적 정신`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업무가 즐거움이 될 수 있도록 창조를 응원하는 것이다. 회사는 직원들의 아이디어 토론을 활성화하고 창조와 실패를 통해 많은 경험을 쌓고 보다 멀리 빠르게 나아갈 수 있는 인재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파괴적 혁신(Destructive Innovation)으로 자기 파괴, 즉 자기 혁신만이 성공을 만들어내는 요인이다.
벤처의 생존율이 5% 미만인 상황에서 벤처의 지속가능성, 즉 영속성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회사와 직원이 창조성을 공유하고 실행한다면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도 이뤄진다.
벤처기업의 지속가능성은 대기업과 달리 선택과 집중을 통해 새로운 전략과 새로운 기술로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면서 찾아야 한다. 즉, 벤처에게 있어 창조성은 지속가능성을 결정짓는 필수요소다.
◇M&A활성화=대다수의 국내 기업가는 M&A에 정서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 당시 많은 국내 알짜기업이 해외 자본에 헐값에 팔려갔던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M&A시장은 벤처 생태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시장이다. 화려한 양지가 있으면 뒷처리를 할 음지도 있어야 한다. M&A는 한계에 도달한 경영자에게 적절한 퇴로를 열어줄 뿐 아니라 다른 사업에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도 안겨준다.
벤처기업이 코스닥 시장에 도달하는 시기는 평균 창업 후 12년 정도다. 이들은 상장을 통해 투자자본을 확충하고, 새롭게 태어난다. 창업 1∼2년 된 초기 기업들은 벤처특별법이라는 정부 지원 아래 대출, 기술개발 자금지원 등 혜택을 누린다. 그러나 창업 5∼7년째에 접어들면 힘든 시절을 보내는 벤처기업이 많다. 정부 지원은 부족한데, 상장을 통한 투자금 확보는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창업 5∼7년째에 도달한 시기를 `죽음의 계곡`으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시기에 한계 기업이 M&A를 기반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인수합병(M&A) 시장이 활성화하면 벤처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이 투자금을 쉽게 회수할 수 있다. 벤처기업은 기업공개(IPO) 중심인 최종 회수시장에 의존하다 보니 창업 후 12년 정도 걸리는 기업공개(IPO)만으로는 투자 활성화에 한계가 있다.
실리콘밸리는 한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벤처 인프라가 잘 발달된 곳이다. 미국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주로 IT 창업사에 투자하고 M&A로 투자 수익을 올린다. 거액의 수익을 챙긴 벤처투자자는 다시 새로운 투자에 다시 나서는 순환 구조를 갖고 있다.
◇재도전 문화=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대부분의 벤처는 실패한다. 실리콘밸리에서 벤처 창업 후 성공하기까지 기업인들은 평균 2.8회 창업한다. 다시 말해, 성공하기 전에 통상 두 번 이상 벤처기업으로 실패한 경험이 있다는 얘기다. 또 실리콘밸리 벤처기업들 중에 창업 2년 뒤까지 성장해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는 벤처의 비율도 5% 미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미국은 벤처 창업이 제일 활성화된 나라로 꼽힌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창업할 사람이 투자받을 곳이 많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투자사들은 벤처의 잠재 기술력과 가능성을 믿고 과감하게 투자한다. 이처럼 초기 창업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돼 있어 사업에 실패해도 벤처 기업가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일은 드물다. 벤처투자의 본질은 `고위험 고수익(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요약된다. 실패 확률이 높은 대신에, 성공하면 고수익을 보장받는 것이 벤처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CEO가 회사 운영이 힘들다고 판단하면 주주총회를 열어 동의를 구하고 사업을 정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기업을 그만두면 회사 빚이 고스란히 CEO 개인의 빚이 되는 `대표이사 연대보증 제도`로 이를 어렵게 한다.
기업을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금융권에 문을 두드리는데 연대보증이라는 족쇄가 채워지는 게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다행히 사업이 성공하면 문제가 없지만, 예상치 못한 시장 환경 변화 혹은 기술 개발 한계에 봉착하면 바로 채무자로 전락한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실패한 기업가에게는 관대한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오히려 실패한 경영자에 더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 실패를 경험한 기업가에게 투자의 우선 순위를 부과하는 것이다. 기회를 잡은 기업가는 예전의 실수를 경험삼아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이 같은 벤처 문화는 처음 창업하는 기업가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들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 창업의욕을 북돋운다.
◇선순환 생태계=미국 벤처업계에 적을 뒀던 상당수 국내 벤처인들은 미국에 성공한 벤처사업가의 자발적인 벤처생태계 조성 문화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미국에서 벤처캐피털리스트로 오래 활동했던 한 벤처캐피털업체 대표는 “빌 게이츠와 같은 성공한 사업가뿐만 아니라 인텔 등 세계적인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5만달러, 10만달러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멘토링을 한다”며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도 있겠지만 최근 기술 트렌드를 보면서 본인의 경쟁력을 높인다”고 평했다.
물론 국내에도 알게 모르게 초기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성공한 벤처사업가가 있다. 하지만 미국과 같이 문화로 자리를 잡기에는 너무 멀게 느껴진다. 우리나라는 미국 · 이스라엘과 함께 대표적으로 벤처 강국이다. 삼성 · LG전자 등 IT대기업들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높이는데도 크게 기여했으며, 인터넷 · 모바일 · 녹색 등 새로운 환경에서 우리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탄생하는데 정부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성공한 벤처사업가들이 솔선수범으로 나선다면, 보다 건전하고 선순환적 벤처생태계가 조성될 것이다. 성공한 벤처인들이 `나는 아니다`며 발뺌을 한다면 정부의 지원도 무의미하다.
최근 `오픈이노베이션` 용어가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으로 크게 거론되고 있다. 이는 벤처도 예외가 아니다. 선도 기업은 신생 벤처기업의 아이디어와 기술을, 신생 벤처기업은 선도 기업의 경영 · 마케팅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도록 선순환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소박스>CEO가 벤처정신을 잃어버리는 이유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모험정신, 즉 벤처정신이 필요하다. 성공적으로 중견기업, 대기업을 성장하는 기업은 이런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혁신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은 중도에 벤처정신을 잃어버린다. 이렇게 되면 기업은 도태하거나 성장이 멈춰버린다.
CEO가 벤처정신을 잃어버리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대표적인 이유는 심리적 것이다.
창업주들은 기업이 `어느 수준에 오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회사가 충분한 수익을 내고 있어 개인적으로 경제적 문제를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다. 따라서 그 수준에 오르면 위험한 결정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또 창업자 중에는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에 염증을 느끼고 이로부터 도피하려는 단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까다로운 상사같이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이 없고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고 나면 그저 `맛있는 저녁식사와 공연`을 볼 수 있으면 만족해 버리고 만다.
직원들의 반발도 벤처정신 소멸에 기여한다. 회사가 새로운 영역에 진출하고 모험할 때 직원을 납득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대다수의 직원들, 특히 창업초기부터 같이 고생하면서 기업을 키워온 직원들은 회사가 웬만큼 성장하면 조금 편하게 일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기업의 리더들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조직의 생리를 거부하고 직원에게 다음 단계의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외부투자자들이 투자액을 언제 회수하고 싶어하는 지도 기업이 과감한 투자 결정을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전문투자자는 기업이 어느 시점에 어느 사업을 정리할 것인지 투자금액을 어느 시점에 회수해 다음번 투자를 할 수 있는지에 민감하다.
만약 투자자가 되도록 빠른 시기에 사업을 정리해 목표로 한 이익을 얻고자 한다면 기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려는 것에 반대할 것이다. 반대로 더욱 큰 수익을 얻기 위해 기업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지나치게 위험한 결정을 하도록 요구하는 투자자도 있다.
가족 기업의 책임감도 벤처정신을 저해하는 요소다. 가업을 이어받은 기업인은 가족 관계 때문에 경쟁이 치열한 산업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대대로 내려온 가족의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소명을 강하게 느낀다. 그래서 위험요소가 있는 투자 결정을 내리려고 하지 않는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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