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IT 융합 미래 산업지도 다시 그린다

[창간특집]IT 융합 미래 산업지도 다시 그린다

2020년 9월 15일, 태풍 `미래`가 한반도에 상륙한다. 최대풍속은 초당 70m, 최저기압은 980핵토파스칼. 10년전 서울과 경기지역을 덮쳤던 태풍 곤파스보다 세력과 풍속이 10% 이상 센 놈이다.

일산에서 마포 방면으로 강변북로를 운행하던 A씨는 자동차에 설치된 디스플레이 패널을 통해 태풍이 수 십분 안에 자신이 있는 곳으로 지나간다는 정보를 받는다. A씨는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경로를 차에서 지시받아 안전한 장소로 차를 몬다. 광화문 거리를 걷던 B씨도 자신이 위험한 지역을 지나고 있다는 정보를 옷에 부착된 패널을 통해 보고받아 근처 건물로 대피한다. 1시간 후 비와 바람으로 도로 곳곳은 가로수가 넘어지고 일부도로는 유실되는 가하면 통신선로가 두절된다. 하지만 태풍 피해 이후 3시간 후 패인 도로는 스스로 복구하고 로봇들이 나와 쓰러진 가로수를 정비한다.



2020년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질 일을 가상화한 것이다. 이는 먼 미래의 일처럼 보이지만 현재 기업과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사업과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정보기술(IT)이 자동차 · 건설 · 의류 · 조선 · 국방 등 다양한 분야와 접목한 컨버전스가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오는 2015년까지 민간기업과 함께 최대 1조7000억원을 연구개발(R&D) 등에 투입해 세계 5대 IT융합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IT융합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IT와 다른 산업 간의 융복합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2015년까지 IT융합산업 내수시장이 85조원 규모로 급팽창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IT융합 확산 전략`을 통해 우리나라가 2015년까지 전 세계 IT융합 신제품의 10%를 생산하고, 2010년 현재 44조원 규모인 내수시장을 85조원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 우리나라가 IT융합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야심찬 전략을 발표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원천기술 분야에선 추종자지만 IT 분야에서 만큼은 선도국가라는 자신감이 반영됐다.

실제 이러한 융합 사례는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IT융합의 미래상은=서울시는 작년 6월 서울 도심을 격자와 순환으로 연결하는 6개 노선 총연장 148.7㎞의 지하차도를 건설하는 `u스마트웨이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이 지하차도는 2017년부터 단계적으로 개통돼 서울 지역 내 출 · 퇴근 시간을 현행 최대 1시간 이상에서 30분 이내로 단축시키는 게 목표다. 지상과 달리 지하도로망은 안전사고 등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해 다양한 기술이 접목돼야 한다.

도로는 센서를 통해 운전자에게 도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줘야 한다. 자동차 역시 이러한 정보를 수신해 운전자에게 알려야 해 지능화된 자동차가 뒷받침돼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문제는 현재 기술 수준에서도 극복할 수 있거나 가시권에 있다.

우선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을 중심으로 마련된 차량 IT혁신센터가 지능형 자동차 개발에 나선 상태다.

피엘케이테크놀로지는 `전방카메라를 활용한 차량추돌 경보 장치`를 개발 중으로 연내 상용화할 전망이다. 이 장치는 전방 카메라를 통해 차량 주행경로의 앞 차량을 추적하고, 앞선 차량과의 거리와 상대속도 정보를 이용해 위험 여부를 판단, 운전자에게 알려준다.

또 디지탈아리아는 차량 계기판 등의 화면으로 다양한 상황 변화와 노인 · 여성 등 사용자 특성에 따른 맞춤형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기술을 연내 제시한다. 이들 장치는 차량에 탑재된 레이더 · 비전 · 적외선 등의 센서와 노변에 설치된 인프라 센서 등과의 통신을 통해 운전자에게 주행안전을 지원하는 장치다. 또 터널 · 포장도로 · 공공건물 등 사회간접자본(SOC) 시설물 스스로가 문제점을 인식하고 치유과정을 반복할 수 있도록 지능형 삽입 · 패치 모듈이 내장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IT융합은 도로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국방 · 의료 · 패션 · 건설 · 에너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즉 IT와 산업과의 융합이 새로운 산업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의류 분야에선 세계 최초로 건국대학교 i패션 의류기술센터가 1대1 맞춤장갑을 선보였다. 광학센서, 이미지 프로세싱, 3차원 손 모델링 및 계측, 패턴 메이킹, 수치제어, 공급망관리(SCM), 제품데이터경영(PDM) 등의 첨단 IT를 접목한 것이다. 이렇게 제작된 장갑은 공군의 조종사와 한국마사회 소속 기수, 골프선수 등에 적용되고 있다. 이미 이 장갑은 시중에도 이마트 등 100여 곳에서 유통이며, 국내외 유명 브랜드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의료 분야에선 어디서나 건강을 위해 질병을 예방, 관리하는 u헬스 서비스와 병원내 장비를 디지털화하고 이를 하나의 통합된 프로그램으로 제어, 네트워크화해 진료 효율을 높이고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병원이 의료-IT융합의 대표적인 사례다.

국방 분야에선 육 · 해 · 공군의 전술지휘통제자동화체계(C4I)에 IT 접목이 활발하다. 군이 전시 작전과 통제를 컴퓨터를 통해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훈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 군은 육지, 바다, 하늘에서 다양한 가상화 솔루션을 이용해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훈련을 수행 중이다.

조선 분야에선 3차원 가상현실로 구현된 항구에서 배의 설계부터 건조에 이르는 최종과정을 점검할 수 있다. 또 사람이 타지 않는 무인선을 이용해 해양감시 · 첩보 · 정찰에 활용하는 기술도 현재 연구되고 있다. 기계 분야에선 생산 · 시스템 운영기술에 IT를 접목, 기계 스스로 지식을 습득, 이해, 판단, 조정하며, 다른 기계와의 대화, 자율적으로 협업하는 기계가 개발돼 조만간 가시화될 전망이다.

이밖에 농업과 일상생활에는 LED 조명을 이용해 식물의 생장속도를 높이고 원하는 정보를 거리 곳곳에 LED 조명을 통해 전시하는 일도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왜 IT융합인가=그렇다면 이처럼 IT와 타산업과의 융합이 왜 필요할까. 이는 IT의 특성인 네트워크화, 지능화, 내재화의 특성을 기존 기술과 산업에 융합,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기 위한 것이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 산업은 기계 · 자동차 · 전자 분야 등에서 중국 의 과감한 투자와 저렴한 노동력을 앞세운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조선 · 자동차 · 기계 · 농업 · 에너지 등의 산업에 IT를 접목하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점차 치열해지는 자동차 산업에선 스마트 기능을 차량에 탑재함으로써 수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조선 분야는 3D 가상현실을 접목해 건조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국산화가 부족한 기계산업 역시 IT의 접목을 통해 고부가가치화는 물론 생산효율화를 이끌 수 있을 전망이다.

국방 분야의 경우 원격으로도 상대방을 제압하고 인간의 희생을 최소화하면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또, 전장의 각 병사에 대하여 지휘부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 지, 상황은 어떠한 지, 부상 및 생존 여부는 어떤지 등을 직접 확인하지 않고도 모든 정보를 전송하여 작전 수립에 기여할 수 있다.

우리 삶의 질 개선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IT산업이 의료와 접목해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대표되는 인구구조의 변화, 전문의료진의 부족 현상 등 사회 · 경제적 요인들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에너지 자원 고갈에 대비해 에너지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데도 IT산업의 융합은 필수적이다.



<소박스> 융합 위해선 제도 개선 뒷받침 돼야

LG전자는 지난 2004년 당뇨폰을 개발했다. 휴대폰에 바이오 기술이 접목된 이 제품은 당뇨병환자나 당뇨가 의심되는 사람이 휴대폰을 통해 혈당을 측정하고 투약관리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법상 의료기기로 분류돼 각종 인허가를 맡아야 하는 번거로움으로 회사는 사업을 접었다.

국내의 한 완성차 업체는 1개 차종 개발에 40∼50개의 핵심전자유닛(ECU)이 필요해 개발 표준을 만들어 부품업체에 배포했다. 그러나 해당업체들은 “우리의 개발과 테스트 역량이 부족하다”며 난색을 표명해 결국 이 회사는 해외에서 수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같은 현상은 한국이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는 주력산업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융합을 시도하다 가로막힌 대표적인 사안들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 IT융합산업의 생태계를 보여주는 현실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난 7월 밝힌 `IT융합 확산 전략`은 IT융합산업에 걸림돌이 되는 생태계를 바꾸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통해 2015년 전 세계 IT융합 신제품의 10%를 창출하고 부품 국산화율을 30%로 끌어올리는 한편 85조원 규모의 IT융합 내수시장을 만들어낸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IT융합 핵심부품 개발을 민관 합동으로 추진해 지난해 10% 수준인 부품 국산화율을 2015년까지 30%로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정부가 앞장서 융합 혁신전략을 내놓은 데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한 것이다. 조선 · 자동차 · 반도체 등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은 이제 중국 · 인도 등 후발 신흥국가들의 부상으로 경쟁국이 바짝 추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융합은 기존 기술 및 제품 · 서비스를 재조합해 새로운 가치와 시장을 창출하는 활동으로 시장 · 산업 · 기술 · 제품 · 학문 등 전 영역에 걸쳐 확대되고 있고 산업 분야는 정보기술(IT) · 바이오기술(BT) · 나노기술(NT) 등이 융합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지능형자동차(자동차+IT), 반도체바이오센서 칩 · 리더(반도체+BT) 등이 대표적이다. 융합의 핵심은 IT와의 융합이다.

그러나 국내 융합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낙후된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경제규모 12위권, 수출 9위권이다. 세계 IT융합 시장 규모는 2020년 3조600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지만 국내 시장은 1237억달러로 세계시장의 3%에 불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그동안 자동차 · 철강 · 반도체 · 조선 · 휴대폰 등 주력산업 수출을 주도하면서 정보통신기술(ICT) · 나노기술(NT) · 바이오기술(BT) 등 융합관련 기술과 별도로 걸어온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딜로이트컨설팅 관계자는 “한국 경제는 가격 경쟁력은 개도국의 추격을 받고 기술경쟁력은 선진국의 견제를 받는 소위 `포지셔닝 트랩`에 빠져 있어 융합이 이를 돌파하는 핵심수단”이라면서 “선진국에 비해서는 융합화 대응 준비가 다소 늦었지만 융합 인프라와 인력 확충 · 제도 개선 · 기업간 협력을 통해 이제라도 융합산업을 선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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