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허드, HP는 내쫓고 오라클은 스카웃

마크 허드 전 휴렛패커드(HP) 최고경영자(53)가 오라클 사장으로 옮기자 오라클 주가가 급등했다. 반면 HP 주가는 급락했다. 허드가 컴퓨터 사업을 강화해 오라클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반면 HP는 기업가치를 잠식당할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판단이 시장에 그대로 반영됐다.

위협을 느낀 HP는 법원 소송까지 동원해 시장 우려를 불식시키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HP는 7일(현지시간) 오라클 공동 사장으로 옮긴 허드를 상대로 기업 비밀을 보호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라며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 법원에 소송을 냈다.

HP 측은 "허드가 HP의 기업 비밀을 이용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지 않고는 오라클을 위해 자신의 일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라클은 앞서 6일 허드를 이 회사의 공동 사장이자 이사회 이사로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영입 발표는 오라클이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업을 넘어 HP와 같은 컴퓨터 제조업으로 진출하는 가운데 나와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오라클은 지난 1월 컴퓨터 제조업체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를 74억달러에 인수했다.

래리 엘리슨 오라클 최고경영자는 허드가 사임하자마자 허드 영입에 공을 들였다. 엘리슨은 허드가 성희롱 의혹과 회사 경비 허위 청구를 이유로 해임되자 HP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엘리슨은 "수년 전 애플이 스티브 잡스를 해고한 이래 허드를 해고한 것은 최악의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엘리슨은 허드 영입 발표 직후에는 "IT 업계에서 허드만큼 뛰어난 경영자는 없다"며 "허드가 HP에서 일을 매우 잘했고 오라클에서 훨씬 더 뛰어난 성과를 내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허드는 그만큼 HP 근무시절 뛰어난 성과를 냈다. 기존 잉크젯과 레이저 프린터시장 점유율을 각각 46%와 50%로 올렸다. 2006년엔 노트북 컴퓨터시장 점유율 1위로 만들었다. 2007년엔 데스크톱 컴퓨터도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허드는 당시 "매일 아침마다 자명종 없이도 새벽 4시45분에 일어난다"며 "나를 깨우는 것은 동부의 경쟁사들"이라고 말할 정도로 `전의`를 불태웠다. HP가 있는 미국 서부는 동부보다 3시간 느리다.

허드는 경비 절감의 귀재로도 통한다. 최고경영자로 취임한 직후 전체 직원의 10%인 1만5200명을 해고했다. 자신도 기본급의 20%를 삭감했으며 데이터센터를 기존 85개에서 6개로 줄였다. 결국 2005년 4월 HP 최고경영자로 취임할 당시 23달러였던 주가를 이후 5년 만에 53.75달러로 2배 이상 올려놓았다.

이처럼 뛰어난 성과를 낸 허드를 해고한 HP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좋지 않다. 하지만 오라클은 호평을 받고 있다. 오라클의 허드 영입 발표 다음날인 7일 나스닥에서 오라클 주가는 5.87%나 상승했다. 반면 HP 주가는 1.04% 하락했다. 허드가 HP를 사임했을 당시에도 HP 주가는 9%나 하락했다.

허드가 회계 조작한 금액은 2만달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HP 이사회는 HP 기업가치를 두 배로 늘려준 허드를 사임시켰다. 하지만 오라클의 최대주주인 엘리슨은 과감하게 경쟁사가 퇴출시킨 `죄인`을 영입했다. 현재 상황으론 시장이 오라클의 손을 들어줬다고 볼 수 있다. 최대주주의 입김이 센 오라클이 이사회가 경영을 주도하는 HP를 누른 셈이다.

한편 오라클이 이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마크 허드는 연봉 95만달러에 보너스 1000만달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또 스톡옵션 1000만주에 향후 5년간 매년 500만주의 스톡옵션도 추가로 받기로 했다.

[뉴욕=매일경제 김명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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