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ICT 표준화와 중국의 부상

[ET단상]ICT 표준화와 중국의 부상

`一步前進 文明巨步` 중국 베이징 이화원 남자 화장실에 쓰인 글귀다.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면 문명은 크게 진보한다는 뜻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라는 일반 남자 화장실에 걸린 진부한 글귀를 일보전진과 문명의 발전에 비유한 것이 이색적이다.

이처럼 최근 중국의 사상은 문명과 경제의 발전을 지향하고 있으며, ICT 표준화 분야에서도 중국의 발전 흔적을 목격할 수 있다. 최근에는 ICT 표준화분야의 G20으로 불리는 선진국 간의 `세계표준협력회의`에 가입해 영향력을 빠르게 키워가고 있다.

지난 8월 30일부터 4일간 베이징에서 중국통신표준화협회 주최로 `제15차 세계표준협력회의`를 개최했다. ITU 등 전 세계 표준화기구 기관장 및 선진국 전문가 130여명이 참가해 스마트 그리드, 클라우드 컴퓨팅, IPTV, 사물지능통신, 4세대 이동통신 등 33개 핵심 표준화 대상을 중심으로 표준화 추진 방향과 전략에 대한 열띤 논의가 진행됐다.

그동안 표준화기구는 개발대상 표준의 특성에 따라 공식(de Jure)표준화기구나 사실(de Facto)표준화기구로 구분하거나, 영향력의 범위에 따라 국제 · 지역 · 국가표준화기구로 구분해 왔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인 구분 이외에 ICT 분야 선진국인 미국, 유럽, 캐나다, 일본, 한국 등의 표준화기구들 간의 `표준화협의체`가 운영되어 왔으며, 이의 전략적 중요도가 점차 강화되고 있음을 우리는 주지해야 한다.

세계표준협력회의(GSC)로 대변되는 표준화협의체는 표준을 직접 개발하기보다는 세계의 주요 표준개발기구 간의 협의를 통해 향후 표준화방향과 전략을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표준화협의체의 전략적 중요성은 미래사회의 핵심 표준화 대상항목을 사전 확인하고, 기관 간의 표준개발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표준개발의 중복 방지 및 협력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표준화협의체에서의 신규 표준항목에 대한 논의 주도는 향후 ITU 등 국제표준화기구와 IETF, IEEE 등 세계적 영향력을 갖는 표준화단체에서의 향후 표준화 활동을 주도할 선제적 효과를 갖기도 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해 세계표준협력회의의 9개회원 중의 하나인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는 2000년대 중반부터 `IP over Broadband Access`를 핵심표준화 항목으로 발제해 와이브로(WiBro) 표준개발 주도 및 세계적 확산을 꾀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2002년 자국의 통신표준화협회를 설립해 ICT분야 표준화 활동을 총괄 조정한데 이어, 2005년도에는 세계표준협력회의(GSC) 회원으로 가입해 표준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다. 또 올해는 지난 8월 회의를 유치하고 개최함으로써 세계표준화 활동에 대한 기여와 중국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중국은 거대한 자국 시장을 바탕으로 일찍부터 3세대 이동통신분야에서 TD-SCDMA, 무선랜 보안분야에서 WAPI 등 독자표준을 개발함으로써 자국 표준이 곧 국제 표준이라는 다소 폐쇄적인 표준화전략을 구사해 왔다. 그러나 세계표준협력회의의 가입을 통해 타국의 표준화기구들과의 협력과 견제, 그리고 필요분야에서의 독자표준개발 등 한층 다양화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제 정보통신 표준화분야에서 거대한 시장을 바탕으로 급부상하는 중국의 표준화 활동에 대해 국가적 차원에서 지속적이고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상생 협력을 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근협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장 khlee@t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