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대만 IT산업, 더 이상 한국 추격자가 아니다

PC·휴대폰 독자 브랜드로 승승장구

<사진설명: 대만 번화가 중 하나인 타이페이 중앙역 앞에는 HTC와 아수스 등 대만을 대표하는 IT 기업들의 광고가 눈에 띈다. HTC와 아수스는 대만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로 제품의 완성도 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의 선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타이베이(대만)=윤건일기자>
<사진설명: 대만 번화가 중 하나인 타이페이 중앙역 앞에는 HTC와 아수스 등 대만을 대표하는 IT 기업들의 광고가 눈에 띈다. HTC와 아수스는 대만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로 제품의 완성도 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의 선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타이베이(대만)=윤건일기자>

지난 5일 대만 번화가인 타이베이 중앙역 앞. 대만 최대 전자제품 유통 체인 노바(NOVA) 매장은 대학 신학기를 맞아 PC를 사려는 학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매장엔 `에이서` `아수스` 외 다른 브랜드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노트북을 전문 판매하는 통린컴퓨터 직원 라이용린씨는 “열에 여덟, 아홉은 에이서와 아수스 제품을 원해 다른 외산 제품은 잘 갖다 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 사람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대만산 제품을 선호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만 IT 기업들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세계 제조기지`란 표현은 더 이상 맞지 않다. 제조는 이제 기본이고, 독자 브랜드 사업으로 성공적인 전환을 이끌어냈다. 단적인 예가 PC다. 세계 톱5 PC 기업 중 두 곳(에이서 · 아수스)이 대만 업체다.

제리 쉔 아수스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확고한 5위를 점했으며 내후년에는 3위 진입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언론 처음으로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에이서는 1위 HP를 위협하고 있다. 전 직원 7000명, 제조 시설 하나 없는 에이서가 거대 HP를 뒤쫓을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다.

타사 제품을 만들어주던 HTC도 자체 브랜드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무서운 기세를 올리는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휴대폰 업체 관계자는 “HTC는 많지 않은 인력으로도 1~2개월마다 신제품을 내놓는다”며 “목숨을 걸고 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에이서(PC), 트렌드마이크로(보안솔루션), 아수스(PC), HTC(스마트폰)의 브랜드 가치는 이미 12억달러를 넘었다. 한국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대만 IT 기업들의 브랜드가 글로벌 수준까지 올라선 것이다.

전통적인 부품, 소재 산업도 자신감이 붙었다. 지난 5월 AUO가 LG디스플레이와 특허 소송을 벌여 승소한 사례는 대만 산업계 내에서 크게 회자됐다. 현지에서 만난 국내 장비 업체 관계자는 “적어도 LCD에서는 한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고 말했다.

대만 타이중 신주과학단지 내 위치한 미디어텍 본사도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한국 언론을 처음 맞이한다는 미디어텍 측은 `스마트TV`용 반도체와 보드 등을 보여줬다. 일명 `산자이폰(짝퉁폰)`에 반도체를 공급하며 성장한 기업으로만 알려진 미디어텍이 미래 TV 시장까지 대비해 모든 솔루션을 완벽히 준비한 것이다.

밍투위 미디어텍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우리는 더 이상 시장을 쫓는 추격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대만 통계청은 글로벌 경기회복에 따른 수출 증가에 힘입어 올 경제 성장률이 8.24%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1990년 이후 최고 기록으로 탄탄한 IT 인프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대만은 지난 6월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맺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차이완 시대` 대만의 부상을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민호 KOTRA 대만 무역관장은 “냉정히 따져 우리의 IT산업이 대만보다 나은 것은 D램이나 낸드 같은 메모리 반도체밖에 없다”며 “대만의 IT 산업이 우리보다 못하다는 `착시`를 벗지 않으면 대만은 우호적인 양안관계 속에서 중국의 정책적 배려를 받게 될 것이고 이는 산업 구조가 유사한 우리나라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타이베이(대만)=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

[창간기획]대만 IT산업, 더 이상 한국 추격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