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이 변했다 ③ ◆
일원동에 거주하는 주부 박 모씨(32)는 요즘 제습제를 교체하는 게 일이 됐다. 예전이면 한 통을 사다 두면 한 달은 거뜬히 썼지만 가을같지 않은 습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최근엔 열흘 정도 되면 제습제가 물로 가득찬다. 박씨는 "예전엔 1~2개씩 필요할 때만 샀는데 지금은 할인점에서 12개 한 묶음씩 산다"고 말했다.
안 모씨(30ㆍ주부)는 9월이 됐지만 아직 옷장 정리를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이맘때쯤 여름 옷을 집어넣고 가을 옷을 꺼내놨지만 올해는 언제까지 더울지 몰라서 아직도 여름 옷을 꺼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선풍기와 에어컨도 아직 덮개를 씌우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 9월이 됐지만 여전히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싶어 장을 보러 가서도 아이스커피믹스를 사 온다.
과학자들의 얘기인 줄만 알았던 기상 이변이 우리 삶을 파고들고 있다. 변덕스런 날씨에 아침에 우산을 챙기는 것은 자연스런 일상이 됐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가장 큰 변화는 더위다. 국립기상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갈수록 여름은 길어지고 겨울은 짧아지고 있다. 1920년대와 비교해 1990년대 서울의 여름은 16일이나 길어졌다. 2040년엔 9일이 더 늘어나 5월 20일부터 여름이 시작돼 10월 2일까지 여름 날씨를 보일 것으로 케이웨더는 예상했다. 특히 올여름 전국 평균 기온은 24.8도로 평년(23.5도)에 비해 1.3도가 높았다. 체계적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온도로 기록됐다.
살인적인 더위에 웬만하면 선풍기 하나로 참고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 습관도 바뀌고 있다. 에어컨을 새로 구입하거나 아주 가끔씩만 이용하던 가정도 더 자주 틀게 된다고 한다. 열대야가 길어지면서 피서를 떠나는 비율도 부쩍 늘었다. 실제 올해 경상북도 동해안을 찾은 피서객은 600만명을 넘어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여름철 활동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새로운 특징이다. 아무리 더워도 학교 수업을 계속했던 것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학교별 수업시간을 30~40분으로 줄였고, 소방방재청은 종합 폭염 대책을 내놓으면서 여름철 야외 활동 자제를 당부했다. 폭염에 취약한 혼자 사는 노인 문제도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들쑥날쑥하는 게릴라성 폭우도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평균 강수량만 봐선 큰비는 아닌데 한 곳에 몰아치는 비가 내리다 보니 비 피해는 생각보다 큰 것이 요즘 특징이다. 국립방재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1971~1980년과 비교해 1992~2001년의 극대 하루 강수량의 발생 빈도를 보면 하루에 150㎜가 넘는 강한 비가 내린 횟수가 예전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이처럼 하루에 몰아치는 게릴라성 호우가 늘면서 사람들의 기상정보에 대한 관심은 크게 늘었다. 케이웨더 홍국제 과장은 "예전보다 날씨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스마트 폰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으로 날씨와 관련된 것을 많이 내려받는 것 같다"며 "케이웨더앱이 출시된 뒤 4달 만에 누적 다운로드 건수가 30만건을 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올여름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서 나타났던 `이안류` 역시 지구 온난화, 해수면 상승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안류는 해안에서 바다로 빠르게 흘러가는 해류로 피서객들이 이안류에 휩쓸려 실종되기도 한다. 해수 온도가 높아질수록 기류가 활발해지면서 이안류 발생 빈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자연재해로 인한 인명 피해가 늘면서 안전 대비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것도 새로운 변화다. 특히 최대 순간 풍속이 초당 14m에 달하는 곤파스가 중부지방을 강타하면서 가로수가 쓰러지고 유리창이 깨지는 현상에 많은 시민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층 아파트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 모씨(39)는 "출근을 하는데 아파트 유리창이 많이 깨져 있어서 놀랐다"며 "하도 깨진 집이 많아 유리를 새로 가는 것만 해도 시간이 걸렸는데 더 단단한 강화유리에 관심을 더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아토피 피부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가운데 예전보다 빈도가 많아진 황사는 골칫덩어리다. 황사 지속시간이 최근 30년 평균 지속시간인 21.1시간보다 점차 길어지고 있다. 지난해 3월 15일부터 사흘간 이어진 황사는 지속시간이 52시간 40분에 달했다. <시리즈 끝>
[매일경제 이재화 기자/용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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