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은 핀셋처럼 콕콕 집어내면서 칭찬은 담요로 흔적 없이 덮는다. `이번엔 좀 놀라시겠지`라고 기대하며 기획서를 제출했건만 `됐어, 나가봐`, 딱 한마디뿐이다. 일이 잘못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파헤치지만 일이 잘되면 당연한 것처럼 시큰둥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꾸중은 부처도 돌아앉게 한다는데 해도 너무하다. 부하가 이룬 일을 가자미눈으로 째려보고, 부하를 격려하는 칭찬엔 인색한 상사, 서러워서라도 출세해야겠다.
서울 사람들이 시골 사람들보다 더 서울 타워를 못 가고 한강 유람선을 안탄단다.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아직 못 간 것이다. 칭찬은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기 때문에 놓치는 경우가 많고 꾸중은 지금이 아니면 못할까봐 부랴부랴 하게 된다. 꾸중은 당장 안 하면 또 반복될까봐 챙기는데 칭찬은 나중에 시간 나면 해야지 하고 미루다가 잊어버린다. 상사의 부정적 시각이라기보다 회사의 필사적 비즈니스 때문이라고 너그럽게 헤아려 주자. 칭찬 안 하는 상사는 내가 투덜거린다 한들 여전히 칭찬하지 않을 것이다. 상사를 바꿀 수 없다면 내 인식을 바꾸면 된다. 이제부터 상사가 꾸중하지 않으면 칭찬으로 간주하자. 족집게 같은 상사가 꾸중하지 않는다면 칭찬받아 마땅한 것이다. 그런 날은 누구보다도 강력한 스스로에게 칭찬하고 스스로에게 상주자. 어차피 상사 때문에 이 회사 다니는 것도 아니고 칭찬 때문에 이 일에 목숨 건 것도 아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추앙받는 유명인도 막상 자신의 아내에게는 진심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함께 섞여 볼 것 못 볼 것 다 알다보면 장점보다 단점이 더 자주 보이게 마련이다. 상사와 나는 주근깨도 보일 만큼 거리가 너무 가깝고 해상도가 너무 선명하다. 솔직히 상사의 장점보다는 결점만 눈에 띄기는 나도 마찬가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