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민관 할 것 없이 연구개발(R&D) 투자사업 체질개선 붐이 거세다. 지난 5년간 정부와 민간의 R&D투자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는 반성 아래 다양한 투자 계획과 추진 과제들이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국가적 R&D역량의 강화를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정책결정자의 직접적인 예산 지원과 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고급 정보 제공과 인프라 구축 등 기업이나 연구소, 대학의 R&D환경 자체를 개선하는 방식이 보다 근본적으로 국가 과학기술 역량을 강화시키는 길이다. 또 투명한 R&D사업평가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국가R&D정보지식포털(NTIS)의 R&D사업 평가위원 후보 추천 서비스에 시맨틱 웹 기술을 적용하기로 발표한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시맨틱 웹이란 최근 국내 주요 포털들이 앞다퉈 전면 도입을 서두르고 있는 차세대 웹 기술이다. 이 기술이 적용된 평가위원 후보추천서비스가 내년부터 국내 R&D관련 부처와 연구소들을 대상으로 제공되면 연구실무자들이 더 이상 인맥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연구분야와 관련된 전문 평가위원들을 더욱 빠르고 손쉽게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이번 발표가 특별한 것은 R&D사업의 성과로 일구어낸 첨단 웹 기술을 또다시 새로운 R&D사업 발전을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많은 기관과 기업들이 R&D역량 강화를 내세우지만 이처럼 R&D의 성과물로 다시 차기 R&D사업을 진흥시키는 등 다양한 방법의 개발에는 고민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쉬울 때가 많다. 각종 연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과 이들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는 부서가 다소 괴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보다 적극적인 연구일선과의 토론이나 의견수렴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문제 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실 이번 시맨틱 웹 적용 발표도 이러한 연구자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NTIS를 운영하고 있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정기적으로 이용자 불편사항을 모니터링하던 중 평가위원 후보 추천 서비스에 보다 효율적인 검색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반영, 논의를 거쳐 시맨틱 웹 기술을 전면 도입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한편, 연구 일선에서도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정책결정자들이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진정성이 없다며 불만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미 자신들을 위한 서비스가 갖춰져 있음에도 이를 미처 알지 못해 제대로 활용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대에 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태도는 이 나라의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연구자가 취할 것은 아닐 것이다.
R&D역량의 강화는 어느 한쪽의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관련 정책을 추진하는 부서와 경영진이 열린 마음으로 현장에 귀를 기울여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짚어내고 이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그리고 현장에서도 이들 정책집행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문제점을 토로하는 한편 지원에 의지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고민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을 때 기대 이상의 창의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김성혁 숙명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ksh@sookmy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