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KT 올레캠퍼스 19층. 말끔한 정장 차림을 한 이석채 KT 회장이 한 손에 아이패드를 들고 나타났다.
이 회장은 "언론 인터뷰 때나 임원회의를 주재할 때 아이패드에 담긴 자료를 활용하면 충분하다"며 KT 회의장에는 종이서류가 사라진 지 꽤 됐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취임한 후 KT 직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KT가 정말 많이 변했어요." "이 회사 KT 맞습니까?" "예전엔 공기업 냄새만 났는데 요새는 KT가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아요." 이런 반응은 KT 공식 트위터(@ollehKT)에도 속속 올라온다.
정통 관료 출신인 이석채 회장이 `KT호` 선장으로 키를 잡으며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한 게 불과 1년8개월여.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공룡 KT에 대해 `환골탈태`라는 외부 평가가 잇따르는 것일까. 전병준 매일경제신문 산업부장 겸 모바일부장(부국장)이 KT 서초사옥에서 이 회장을 만났다.
◆ `공룡 KT` 1년 만에 바꾸다
= 이제 임기 중 반환점을 돈 이 회장에게 KT CEO로서 소회부터 물어봤다. 그는 "뜻하지 않게 KT에 왔다"고 말문을 연 뒤 자신이 KT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첫인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 회사에 합류해 들여다본 KT는 만신창이였어요. 6년간 외형적 성장은 사실상 멈췄고 2조원이던 연간 이익은 1조원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특히 KT 캐시카우인 유선 부문 매출이 매년 6000억원씩 줄었으니까요."
당시 KT는 혁신이나 효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보다 한발 앞서 나간다는 건 힘들어 보였다. 이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조직원들에게 긴장과 자신감을 동시에 심어주려 했다. KT를 고질적으로 짓눌러온 납품비리 관행을 잘라내기 위해 칼을 뽑아들었고 고객 응대에 태만한 직원을 엄중 문책했다. 중소 협력업체에 `슈퍼 갑`처럼 행세한다는 외부 비아냥을 극복하려고 중소기업 상생을 모질게 독려한 결과 협력업체 사이에 KT가 달라졌다는 반응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KT가 뭔가 달라졌다고 일반인들이 느낀 게 `쿡(Qook)`과 `올레(Olleh)` 광고였다.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벗고 보다 젊고 역동적인 변화상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게 이 회장 판단이었다. 이는 그대로 적중했다.
애플 아이폰 도입, 국가 어젠더로 부상한 스마트워크 실시, 와이파이(무선랜) 존 수만 개 설치, 무선 데이터 이월제 적용 등 최초와 최고라는 수식어가 KT에 잇따라 붙었다. 이 모두가 이 회장 취임 후 1년 반 만에 일어난 일이다.
노조도 이 회장 취임 후 빠르게 달라지는 회사 변화상을 보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KT 노조는 작년 7월 상급단체인 민노총 탈퇴를 선언한 데 이어 올해 3월에는 노사화합선언을 체결하고 회사 정책에 적극 호응하겠다고 손을 잡았다. 고용노동부는 이런 KT에 올해의 노사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여했다.
이 회장은 "KT가 운이 좋은 점이 있었다"며 겸손해 했다. 어려울 것이라 여겨졌던 KT와 KTF 간 합병이 성사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게 한 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고위 관료로서 국가경제를 운영해본 이 회장 경험이 KT를 변신시키는 데 큰 자산이 됐을 것으로 평가한다. 이 회장도 이런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종전까지 KT와 KTF 간 합병이 잘 안됐던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스마트폰 도입이 늦어진 것도 그렇고요. 이러한 의사결정이 단순히 한 회사만을 위한 것이라면 모르지만 국가 산업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점을 진정으로 호소하면 정부와 언론이 마음을 열어주게 마련입니다."
수십 년간 경제관료로서 키워온 거시적 안목으로 기업의 이해와 국가 산업적 이해를 정확히 연결시켰기 때문에 KTㆍKTF 합병과 아이폰 국내 도입이라는 난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셈이다.
이 회장은 "기업은 기업다워야 한다. 그리고 버려야 얻는다"는 점을 첫 번째 경영철학으로 꼽았다. 사고방식과 조직, 행동이 기업다워야 하고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면 달콤한 기득권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버리지 못하면 새것을 얻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KT가 최근 시도해온 사업은 금기 영역이자 비즈니스 모델을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넷전화, 와이파이 등은 그동안 유선통신 사업에서는 막아야 할 사업이었죠. 하지만 과감히 도입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았습니다. 새살을 돋게 하려면 좀 아프더라도 옛 살을 도려내야지요."
그는 또 "고객 마음을 사지 못하면 기업은 죽는다"며 "기업은 속도가 빨라야 하고 일 잘하는 사람이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 이석채와 아이폰
= 이 회장에게 애플 아이폰은 어떤 의미일까. KT는 지난해 11월 아이폰 3GS를 도입한 데 이어 이달에 아이폰4를 국내에 출시했다. 이는 한국 사회에 충격을 주고 스마트폰 전쟁을 야기했지만 일각에서는 국민기업 KT가 외산 제품을 앞장서 도입하려고만 한다는 평가도 내놨다.
이 회장은 "아이폰은 한국에 스마트폰 혁명을 촉발한 계기가 됐고 국산 부품이 53%를 차지하지만 주력은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19~20세기 초 일본이 현대화에 나설 때 서양 문물에 충격을 받고 실력을 갈고닦아 `산업대국` 일본을 만들었듯 아이폰이 가져온 충격은 한국을 변화시킬 것이란 생각이다.
"한국 정보통신산업 재도약은 이제 시작입니다. 아이폰이 그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죠. 아이폰이 들어오고 앱스토어를 경험하면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수요가 늘고 많은 젊은이들이 앱을 만들겠다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특히 슈퍼앱스토어가 탄생하면 세계 30억 인구가 모바일 콘텐츠를 사용하는 단일 시장이 열립니다."
이 회장은 "우리 생활 모든 것이 모바일 혁명이라는 틀 속에서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기기관차가 나오면서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전화가 발명되면서 인류 삶이 바뀌었듯이 오늘날 모바일 혁명으로 인해 앞으로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올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모바일 혁명에 따른 파급효과를 예측하기 힘들지만 굉장히 큰 기회를 줄 것임은 분명하기 때문에 누가 빨리 이러한 환경을 받아들이느냐 하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매출 30조원과 클라우드 컴퓨팅
= 아이폰에 이어 이 회장이 내놓은 카드는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각종 데이터ㆍ소프트웨어를 서버 컴퓨터에 저장해두고 인터넷으로 필요할 때마다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다양한 기기를 통해 시간과 장소 제약 없이 자료를 내려받을 수 있어 편리하다.
이 회장은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 단기간에 세계 톱 역량을 갖출 수 있었고 외국 유수 업체들도 이를 보러 온다"면서 "가격 경쟁력과 데이터 저장ㆍ추출기술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어떻게 이런 가격대에 클라우드 서비스가 가능하냐고 외국 기업들에서 질문도 받는다고 한다. 실제로 이 회장은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을 제1 신성장사업으로 꼽고 있다.
KT는 5년 후인 2015년에는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만 연매출 7000억원을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중 국외 매출 비중이 30~40%에 달할 정도로 외국 진출 가능성도 밝다. 이미 클라우드 사업 첫해부터 KT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아시아권 기업들에서 문의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회장은 "매출 성장이 정체에 빠졌다고 상심할 게 아니라 절박하게 살길을 찾으면 활로를 찾을 수 있다"며 "향후 5년간 매출 10조원을 더해 2015년까지 매출 30조원대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연간 2~3% 성장도 버거워 보이던 KT가 연 10% 성장세를 거두는 `광폭 행보`를 지켜보는 것도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믿음과 자신감을 되찾은 게 다행입니다." 공룡 KT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지와 결단은 더 이상 이 회장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KT 직원 모두의 것으로 1년여 만에 확산돼 있었다.
■ 국가가 또 부른다면?… 이곳이 내 마지막 일터!
이석채 KT 회장하면 최고의 보직만을 밟은 엘리트 관료를 연상하기 쉽다. 청와대 경제비서관과 경제수석, 경제기획원 예산실장, 정보통신부 장관까지 공무원들이 한번 가기도 힘든 핵심을 두루 거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회장은 본인 스스로를 `굴곡이 많은 공무원`이라고 회상했다. 관료로 일하던 시절 후배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 1위로 꼽혔고 업무능력을 인정받았음에도 한때는 `좋은 보직`과 거리가 멀었다.
이 회장은 "과장 시절 대부분을 새로 생긴 부서에 갔다. 경제조사3과장. 경제기획4과장, 대외협력기획과장 등 소위 주무 핵심부서에서 일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나도 잘나가는 부서로 이동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보다는 자기가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결과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기획4과장을 할 때는 주무 과장보다 더 주목받았고, 부서를 옮겨갈 때마다 대통령이나 부총리에게 정책을 보고하는 `알토란` 부서로 탈바꿈했다.
국가를 위해서 일한다는 그의 `소신` 행보는 한때 수렁 속에 빠지기도 했다. 훗날 무혐의로 밝혀진 2001년 PCS 사업권 선정건은 그를 오랫동안 힘들게 했다. 탄탄한 행보를 내디뎠던 `관료 이석채`는 그렇게 뭇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는 듯했지만 지난해 KT의 구원투수로 등장하면서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KT의 한 인사는 "업무 공백이 긴 이 회장이 급변하는 정보통신 환경 속에서 잘해낼 수 있을지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는 이 회장 없는 KT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KT 변혁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이 회장의 리더십은 대외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최근 총리ㆍ대통령실장 등의 인선 때마다 이 회장이 하마평에 수시로 오르내린 게 이를 입증한다. 그만큼 정부 주변에서 그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이제는 인생 3모작이라는데 국가가 부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 회장은 "내 나이를 생각해보면 국가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다. KT가 내 마지막 일터라는 각오로 뛸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정 어젠더로 `공정 사회`가 제기된 데 대해 "공무원들이 장관을 해야 반드시 행복한 건 아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공직은 인생의 한 단계에 불과하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게 중요하다"고 공직에 있는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그는 "공직자들은 스스로 눈을 낮춰야 한다. 공직에 들어온 이상 나에게 주어진 월급에 나를 맞춰야 하고 공직을 통해 기쁨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스트레스를 잘 잊는 것`이 자신의 건강 비결이라고 꼽았다. 그는 "골치 아픈 일이 있어도 집에 가면 잊어버린다"며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먼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젊은 직원들이 본다면 `쿨`이란 표현을 썼을 것이다.
■ 이석채 회장은
△서울 경복고 졸(1964), 서울대 경영학과 졸(1968) △미 보스턴대 경제학 박사(1982) △행정고시 7회 △대통령 비서실 경제비서관(1984~1988) △경제기획원 예산실장(1992~1993) △재정경제원 차관(1995) △정보통신부 장관(1996)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1996~1997) △미 미시간대 경영대학원 초빙교수(1998~2000)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2003~2008) △BT 고문(2008) △국민경제자문회의 민간자문위원(2008~현재) △KT 대표이사 회장(2009~현재)
[인터뷰 =매일경제 전병준 산업부장 겸 모바일부장(부국장) / 황인혁 기자 / 손재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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