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IT업계에서는 오라클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래리 엘리슨의 독설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미국 일간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이 10일 보도했다.
특히 그의 공격적인 언변은 현재 미국 IT업계 구도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석돼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엘리슨은 휴렛패커드(HP)의 이사진이 마크 허드 전 CEO를 축출한 것을 놓고 "멍청이들(idiots)"이라고 비난한 뒤 보란듯이 허드를 자사의 공동사장으로 고용했다.
또 HP가 새 CEO로 전 SAP CEO인 레오 아포테커를 선임하자 월스트리트저널에 보낸 이메일에서 HP 이사진을 "광란상태(madness)"라고 말하고 모두 사임해야 한다고 쏘아붙였다.
전 오라클 임원으로 최근 엘리스의 또다른 공격대상이 된 세일즈포스닷컴의 CEO 마크 베니오프는 "기본적으로 그는 모든 시장참여자에게 `나는 너의 적이다`라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같은 엘리스의 독설은 단순히 실리콘밸리에 흥밋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최근 컴퓨터 업계의 점증하는 긴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이 업계는 마치 놀이공원의 범프카처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등으로 나뉘어 있던 산업 분야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기업 간 무한경쟁에 돌입한 상태.
하드웨어업체였던 델과 HP가 소프트웨어시장에 뛰어들고 있고 오라클 등 소프트웨어업체는 하드웨어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
제임스 알렉산더 인포테크리서치그룹 수석부사장은 "지난 15년간 비교적 평화로웠으나 최근 최고의 매출과 시장점유율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생겼고 이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인수를 통해 다른 영역에 뛰어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엘리슨의 화려한 언변을 보면 오라클의 야심이 드러난다.
오라클은 내년에 피플소프트와 시벨시스템스 등의 인수를 통해 낡고 오래된 소프트웨어부문을 대체할 `퓨전`이라고 명명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온라인 고객관리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세일스포스닷컴과의 접전이 불가피해졌으며, 이에 따라 이 회사의 CEO인 베니오프를 공격한 것.
HP에 대한 공격 강도가 강한 것은 그만큼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HP와 오라클은 모두 법인고객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통합시스템을 개발 중이며 오라클은 이를 위해 지난해 74억 달러나 들여 선 마이크로시스템즈를 인수했다.
이와 함께 IT 컨설턴트인 로브 앤더리는 엘리슨은 IBM과 경쟁하기 위해 HP가 자사가 필요한 부문을 판매하기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앤더리는 "HP는 그가 IBM과 한판 대결을 벌이는 데 필요한 자산을 가진 유일한 회사"라면서 "따라서 HP를 깎아내려 HP의 이사회가 보다 협력적인 입장이 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HP의 새 CEO가 독일의 SAP와 보다 긴밀하게 협력하게 되면 오라클로서는 새로운 대형 경쟁자가 생겨나는 것으로 업계는 분석했다.
이는 가격인하 등 보다 치열한 경쟁을 동반해 엘리슨에게는 악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객들과 실리콘밸리 관전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물이 될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