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세계 표준의 날에 드리운 그림자

지난 10월 9일. 564돌 한글날 세종대왕릉이 있는 여주에서 한국어정보학회가 열렸다. 행사 참여차 방한한 중국동포 학자는 세종대왕이 잠든 그곳에서 한국 내 자판 표준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그가 이 같은 호소를 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벌써 10여년 넘게 한국과 미국, 중국을 오가며 휴대폰 한글 자판의 표준화를 촉구했다.

13일 오후 서울 대한건설설회관에서는 `세계 표준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산학연 관계자들이 모이는 표준 관련 연중 최대 행사다. 김황식 국무총리까지 참여했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최근 불거진 중국의 `한글공정` 논란의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기 때문이다. 휴대폰 한글 자판 국내 표준조차 만들지 못한 상황에서 세계 표준의 날 행사를 성대하게 여는 게 다소 생뚱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나라는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매우 활발한 표준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 지난 4일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이사국에 여섯 번째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ITU 이사국은 전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기술표준 결정과 주파수대역 분배 등을 담당하는 ITU의 실질적인 운영과 전략계획을 수립하는 역할을 맡는다.

IT 발전과 함께 한글의 활용 범위는 더욱 넓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한글이 과학적인 문자라며 그저 자랑스럽다고 외치기만 하지 한글을 디지털화 · 세계화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 스마트TV 등 한글을 입력해야 하는 첨단 IT기기는 급증하는데 디지털 한글 표준화는 손 놓고 있다.

한글은 이제 더 이상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한글은 한국은 물론이고 북한과 중국 조선족,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이 사용하는 글로벌 문자다. 체계적으로 세계화하려는 노력은 종주국인 우리의 몫이다.

훈민정음 창제 원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휴대폰 한글 입력 표준은 물론 우리말에 없는 발음이라도 정확하고 일관성있게 표기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세계 표준을 선도해야 한다.

세계 표준의 날, 한글 휴대폰 자판조차 표준화하지 못한 우리의 현실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