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과학벨트사업, 결단이 필요하다

[ET단상]과학벨트사업, 결단이 필요하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표류하고 있다. 정부가 기초과학의 획기적인 진흥을 통한 미래성장동력을 확충하기 위해 국제과학비즈니스 벨트를 조성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추진에 필요한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2년이 다돼 가도록 세종시 연계, 충청권 유치 주장 등과 얽혀 국회에 계류돼 있는 형편이다.

과학비즈니스 벨트사업의 핵심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시설인 중이온가속기와 글로벌 기초과학 연구거점이 될 기초과학연구원 건설이다. 그 중 핵심시설인 중이온 가속기는 상세설계와 구축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또 중이온 가속기를 직접 활용해 노벨상에 버금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에는 꽤 오랜 시간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중이온가속기가 있다고 해서 항상 최고의 연구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기초과학 연구에는 언제나 경쟁자들이 있게 마련이며, 많은 국가들이 과학자들이 새로운 가속기를 제안하여 현재의 설비들을 거의 무용지물처럼 만들 수도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 기초과학이 발달했음은 최근 과학사에서 수없이 많은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다. 특히 1988년부터 작동한 일본의 트리스탄가속기는 1998년 유럽과 미국의 전자-양전자 가속기들에 의해 밀려났고, 유럽과 미국은 이 두 가속기를 가지고 경쟁하다가 현재의 최고에너지의 유럽 대형 강입자가속기를 위해 2000년도에 벌써 역사 속으로 퇴장시켰다.

과학 연구에서 우리가 항상 최고를 유지할 것이라는 것은 오만에 가깝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벨트를 둘러싼 현재의 상황을 보면,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서는 이런 과학 경쟁에 대한 깊은 배려를 전혀 볼 수 없어 비슷한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나는 정말 씁쓸한 기분을 느낀다. 우리나라는 관련 법규가 없으면, 이런 사업의 집행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상세설계를 위해서 성능 검증을 할 시제품을 만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럴 연구비가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치권은 언제까지 관련 법안 통과를 미룰 것인가.

이뿐만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과학벨트가 우리 기초과학에 크게 기여할 부분은 기초과학연구원 설립인데도 불구하고 법안 통과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 작금의 상황이 더욱 씁쓸하다.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3000명 규모, 50개 연구단으로 구성되고 연구단의 50%는 국내외 대학 및 연구기관에 설치하는 네트워크형 운영을 지향한다. 좀 더 정확한 개념정리가 필요해 보이긴 하지만 여러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는 종합연구원이 없었던 우리나라는 주로 대학 교수 차원의 소액 연구비나 연구시설에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필자는 이를 크게 환영하며 아울러 기대하는 바가 크다.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우리 과학자들도 조속히 과학벨트 사업이 착수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답답한 것은 과학계가 원하는 사업들을 위정자들이 너무나 학문과는 거리가 먼 외적 환경과 연계시키는 현 상황이다. 묵묵히 자기분야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결실을 온 국민이 향유하게 하려면 정치권이 눈앞의 정치적 이익이나 인기에 연연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가적 관점에서 이 사업을 고민하고 하루빨리 착수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 중심에 과학벨트 특별법의 제정이 있다. 이를 위해 특별법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정치권이 결단을 내려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손동철 한국고에너지물리협의회장 son@k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