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대안 세계의 꿈을 보여준 게임스토리](https://img.etnews.com/photonews/1010/045962_20101018164615_381_0001.jpg)
게임이란 놀이면서 동시에 이야기 예술이다. 이야기 예술은 인류의 진화와 더불어 발전해왔다. 그리스 신화의 별자리 이야기가 말해주듯 천공의 별빛과 내면의 불꽃이 분열되지 않았던 고대에는 서사시가 있었다. 이 행복한 일체감이 분열되던 고대 후기에 비극이 나타났고 분열의 간극이 더욱 커진 중세에는 로맨스가 나타났다. 산업화로 토지기반의 공동체가 해체된 후 도시에서 파편화된 개인으로 살게 되자 소설이 등장했다. 사이버 공간에서 일하고 노는 가상적 주체가 되었을 때 비로소 게임이 등장했다.
컴퓨터 게임은 정보화 시대의 인류가 요구하는 새로운 이야기 예술이다. 인류는 항상 주어진 현실 세계에 만족하지 않았다. 보다 정의롭고, 보다 멋있고, 보다 사리에 맞는 `또 다른 세계`를 찾는다. 이 같은 대안세계의 꿈이야말로 스토리의 본질이다. 인류사는 현실에서 잠재적, 가상적으로 존재하던 꿈들이 이야기를 통해 표현되고 마침내 현실에서 하나씩 구현되는 과정이었다.
NHN 게임문학상은 이러한 시대적 의의에 걸맞은 수준 높은 게임 스토리를 요청했고 열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 짧은 응모 기간 동안 장편 소설 한 권 분량의 원고들이 1800편 이상 모인다는 것은 국내 공모전에서 유례가 드문 일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응모작들은 정식 소설과 같은 유려한 문장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직 게임 시나리오, 게임문학이라는 형식이 자리잡지 못한 탓이다. `과연 이것이 글 자체로 읽힐 수 있는가` 하는 가독성 관점에서 의심스러운 원고들도 많았다. 그러나 응모작들은 게임 스토리가 대안 세계를 향한 소중한 꿈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열정을 뚜렷한 주제의식과 활달한 사건 전개로 보여주었다.
대상을 받은 `도가비전`은 매우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삼국유사의 비형랑 설화는 전형적인 이야기 소재다. 이야기는 현실에서 지극히 작은 사람(엑스트라)이 허구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주인공)이 되는 가치전도가 필수기 때문이다. 비형랑 이야기는 현실 역사를 지배했던 주인공들, 즉 신라 진평왕 시대의 돈 있고 권력 있고 똑똑하고 도덕적인 인간들이 아니라, 야밤에 도깨비나 여우와 놀러 다니던 비주류 인간에 주목함으로써 현실 가치가 전도된 대안 세계의 꿈을 함축했다.
게임 스토리 도가비전은 이 전통적인 설화에 더욱 독창적인 가치 전도를 시도했다. 도가비전은 비주류 인간 비형랑 이야기 중에서도 더욱 비주류였던 괴물들, 즉 비형랑을 따라다니던 도깨비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친근하고 명랑한 소녀로 표현된 도깨비 종족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 세상에서 소외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인생을 사랑할 수 있는 따뜻한 대안 세계를 그렸다.
게임 스토리는 아무리 황당하고 허무맹랑한 설정에서 출발할지라도 그 속에서 인생의 모범적인 패턴을 포착하려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를 반영한다. 좋은 게임 스토리는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찾는다. 인생에 대한 내밀한 통찰을 얻기 위해 필요한 영감을 제공한다. 사용자들은 자신도 그 세계에 참여해 의미를 찾고 싶어하게 된다. NHN 게임문학상은 이 같은 게임 스토리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게임스토리가 이야기 예술의 새로운 주류로 등장하는 드라마틱한 출발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 cglyou@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