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게임] 2회 게임 중독 고위험군 아이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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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게임 중독을 게임의 문제로, 혹은 게임 시간의 문제로 쉽게 얘기한다. 그래서 게임 내용을 규제하거나 게임 시간을 규제하는 것으로 중독 문제를 풀려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나 소위 `게임 중독`에 빠졌다고 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실제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심각한 게임 중독에 빠졌다는 사람들조차 성장과정, 가정환경, 사회적 소외 등 복합적인 문제의 도피처로 게임을 선택하는 게 대부분이다. 게임 중독 고위험군 판정을 받아 지난 4월부터 인근 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민호(가명 · 14)의 일상과 주변 환경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할머니는 제가 게임하는 거 잘 모르세요. 잠은 형이랑 둘만 자고요.”

학교에서 실시한 인터넷 중독 자가진단 척도(K-척도)에서 고위험군 판정을 받은 중학교 2학년 민호의 첫 마디다. 민호는 지난 4월부터 인근 광진구 IWILL센터의 게임 중독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고위험군은 검사 결과 인터넷이나 게임에 빠져 중독될 위험성이 높은 집단을 말한다. 실제로 민호는 보통 하루에 4시간은 게임을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게임을 처음 접한 민호는 한때 `컴퓨터에 미쳐서` 학원도 안 가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전에는 주말에는 새벽 4시까지도 게임을 했지만 요즘은 그래도 새벽 1시 전에는 컴퓨터를 끈다.

학교와 학원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 앞에 붙어 있는 아이. 그게 민호다. 민호의 일상을 보자. 학교 끝난 후 집에 돌아오면 1시간 정도 게임을 하고 학원에 간다. 7시 넘어 학원이 끝나면 보통 친구들과 PC방에 들러 놀다가 10시쯤 집에 돌아와 다시 게임이나 인터넷을 하다 잠든다. 컴퓨터로 음악을 들으며 메신저로 친구들과 대화하거나 미니홈피를 꾸미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전형적인 고위험군 학생의 모습이다.

게임이 민호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실제 만나 본 민호는 운동을 좋아하는 보통 아이였다. 제일 좋아하는 게임도 축구 게임 `피파 온라인`. 민호는 “축구, 야구, 농구 등 운동은 다 좋아한다”고 말한다. 친구들과 축구하고 농구하며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실제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 없다. 같이 놀 친구도 없다. 모두 학원에 가야하니까.

◇PC방 외엔 갈 곳이 없어요=“학교 끝나면 다들 학원으로 가요. 학교와 학원 왔다 갔다 하다 보면 같이 모이기도 힘들고 같이 놀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죠.” 그러니 친구들이 학원이 끝나고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7~8시 이후에 만나는 게 고작이다.

그 시간에 아이들은 어디로 갈까. PC방 외엔 거의 없다. 그게 아니면 그냥 동네를 돌아다니는 정도다. 시간도 없고 다른 놀이문화가 없는 아이들에게 유일한 공동의 놀이는 게임이다. 그게 현실이다. 게임에 책임을 돌리기에 앞서 현실부터 직시해야 한다는 얘기가 여기서 나온다. 민호는 “게임 하지 않고 친구들이랑 운동할 수 있으면 게임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은데, 모일 수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가정에서 돌보는 이 없는 취약한 환경=PC방이 문을 닫는 10시에 집으로 돌아오면 민호는 또 게임을 한다. 친구들은 부모님이 게임 시간을 제한하기도 하지만 민호는 게임을 많이 한다고 제지를 받은 적이 없다. 아빠는 지방에서 일하고 엄마도 1~2주에 한번만 들어온다. 같은 동네에 사는 할머니가 살림은 돌봐 주시지만 방이 좁아 같이 살지는 않는다. 저녁에는 고등학생인 형과 민호만 남는다.

민호는 “누가 게임하는 것에 대해 간섭하면 답답하다. 몰래라도 할 것 같다”고 말한다. 게임 아니면 위로받을 데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중학교 들어와 공부가 어려워지면서 수업 태도가 안 좋아진 것은 걱정이란다. 실제로 게임이나 인터넷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은 부모가 맞벌이 등으로 바빠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거나 가족 간 의사 소통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민호의 사례는 개인의 열악한 일상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게임 중독`은 게임이나 인터넷 자체보다는 사회 안전망 혹은 놀이 문화의 문제에 더 가깝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 같은 사회 문제와 내외부 환경을 도외시한 채 게임 자체를 규제하려는 정부와 국회의 시도는 현실과 거리가 참 멀어 보인다.

민호는 그래도 광진구 IWILL센터의 인터넷 중독 치료 과정인 `꿈틀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게임 시간을 다소 줄였다. 센터에서 밴드 활동도 한다. 인터넷이나 게임 외에 다른 활동을 하며 성취감도 느끼고 자연스럽게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한다. `게임 중독`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