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를 기억하는가. 1985년 미국에서 개봉해 올해로 25년이 된, 후속작 `백 투 더 퓨처2(1989년)`와 `백 투 더 퓨처3(1990년)`까지 포함해도 20년이 넘은 이 시리즈는 흘러온 시간을 반영하듯 SF(Science Fiction)의 고전이 됐다.
하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여행한다는 영화적 상상력, 그 속에 표현된 미래 모습 등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과 호기심을 준다. 현재 진행형인 그 추억과 인기에 지난 25일(현지시각) 미국에선 화려한 25주년 기념식이 열렸고 오늘부터 시작되는 과천국제SF영상축제에서는 3부작이 특별 상영될 예정이다.
◇영화 속 미래 `2015년`=`백 투 더 퓨처` 1편의 대성공으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4년 뒤 후속작 `백 투 더 퓨처2`를 내놓았다. 1편이 과거에서 벌이는 사건을 다룬다면 2편의 무대는 미래다. 주인공이 자동차로 된 타임머신을 타고 2015년으로 건너가 뒤틀린 인연을 바로잡는다는 내용이다. 1989년 이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눈길을 끈 건 단연 미래 생활이었다. 영화 속 시점 기준 30년 뒤, 영화를 보는 관람객의 입장에선 22년 뒤로 그려진 2015년의 모습은 흥미로웠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젖으면 바로 건조되는 의류, 자동으로 발 크기에 맞춰주는 신발, 눈앞에 펼쳐지는 3D 홀로그램 등 감독의 상상력으로 그려진 장면들은 마치 우리가 평소에 생각해오던 익숙한 모습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백 투 더 퓨처에서 그려진 미래는 허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려진 모습에 공감했다. 먼 미래로만 생각했던 2015년을 5년 앞두고 있는 현재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지난 8월 미국 특허청에서 공개된 문서 하나.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자동으로 끈을 매는 신발 제조에 관한 특허 내용이었다. 끈을 자동으로 조이는 기능, 농구화처럼 생긴 디자인이 공개되자 인터넷은 달아올랐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미래 신발을 떠올린 것이다.
나이키는 이 신발의 상용화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 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영화 속 신발이 현실에서도 개발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이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백 투 더 퓨처 속 아이디어는 실제 상용화된 바 있다. 피사체에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오토 포커싱` 기술이 그 중 하나다. 영화를 본 이들도 기억이 가물가물하겠지만 미래로 건너간 박사가 주인공 아들을 찾을 때 쓰는 망원경에서 자동 초점 기능이 나오는데 사람의 얼굴을 찾아 초점을 맞추고 웃으면 자동으로 촬영이 되는 최근 디지털 카메라의 안면 인식 기능과 거의 같다.
영화 속 벽걸이 TV도 그렇다. 미래 주인공의 아들이 집에 돌아와 켜는 벽걸이TV는 그것이 LCD인지 PDP인지는 알 수 없지만 TV는 앞으로 두께가 얇아져 벽에 걸고 쓸 수 있을 것이란 당시의 예상은 현재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요즘 TV는 화면이 더 커지는 반면에 점점 더 액자처럼 변하고 있다.
TV를 이용한 영상 전화도 같은 사례다. TV에 상대 영상을 띄워 놓고 대화하는 장면은 2010년 현재 기업 내에선 익숙한 모습이고 최근엔 가정 내 보급을 앞두고 있다. 미국 시스코는 다음 달 가정용 TV로 영상 통화가 가능한 시스템을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도 있다. 특히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장면들은 아직 상상 속에 남아 있다. 날아다니는 자동차나 땅 위에 부상해 이동하는 스케이트보드 등은 간간이 개발 소식이 들리지만 상용화됐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대중화까지는 2015년을 넘길 공산이 크다.
◇상상력 발전소 SF=SF는 오랫동안 첨단 과학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다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자극해왔다. SF 속 모습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 백 투 더 퓨처만은 아니다.
아서 클라크의 1964년작 `태양으로부터 부는 바람`에 등장하는 태양풍 우주선은 과학자에게 오랫동안 연구 과제를 던진 끝에 올해 일본에서 현실화됐다. `이카로스`라 불리는 우주선은 초박막 필름으로 된 돛을 펼쳐 태양광에서 오는 미미한 압력을 동력으로 움직인다. 돛을 이용한 우주선은 이번에 처음 개발됐다.
로봇이라는 용어 자체가 체코 극작가 카렐 차펙의 작품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아이 로봇`에서 밝힌 `로봇은 인간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방치하지 않는다`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등의 로봇 공학 3대 원칙은 교과서에도 수록됐다.
SF는 첨단 과학을 이끄는 `상상력 발전소`인 셈이다. SF에 대해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저서 `미래 쇼크`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SF는 미래 사회학이다.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 부딪히게 될 정치, 사회, 심리, 윤리적 문제의 정글 속을 상상력을 발휘해 탐험해 보도록 이끌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SF는 `미래의 나`를 위해 읽혀져야만 한다.”
SF를 접하며 미래를 예측하고 상상해보면 자연스럽게 창의성을 키울 수 있다. `아바타` `아이팟` 등의 성공으로 여느 때보다 창의성을 길러야 한다며 강조하고 있는 현재 가장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척박하다. 상호 자극이 되어야 하는 국내 SF와 과학, 기술의 선순환은 끊어진지 오래고 SF 문화는 갈수록 그 모습을 찾기 힘들다. 태권브이가 자랑스러운 SF 콘텐츠임은 분명하지만 아직도 태권브이만 눈에 띈다는 건 현실의 씁쓸한 단면이다.
흔히 21세기를 상상력의 시대라고 한다. 지식은 누구나 맘만 먹으면 쌓을 수 있지만 지식을 재가공하는 능력은 다르며 상상력이 있어야 창조가 가능하고 리더가 될 수 있다. 창조적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선 항상 꿈과 상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이런 가운데 SF 갈증을 해소할 행사가 28일부터 11월 7일까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린다. 11개국에서 엄선된 37편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있는 `과천국제SF영화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외계생명체를 증강현실 캐릭터로 보여주는 `스페이스 오딧세이`, 일본 우주비행사 모리 마모루 박사와의 만남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SF와 과학의 상관관계 강연이 눈길을 끈다. SF 속에 등장하는 외계 생명체에 대한 현대 과학의 입장은 어떠한지, SF영화 속에 표현되는 과학 이론들의 실제 가능성, 그리고 SF영화가 어떻게 역사 · 철학 · 문학 · 과학을 연결하고 있는지 등을 소개한다. 정재승, 장대익, 이명현 등 현재 과학계와 SF 문화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10명의 강연자가 참여해 지적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 기회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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